1905년, 인류의 과학사에 큰 획을 그은 이론이 발표되었다. 바로 특수상대성이론이다.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속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이론이다. 10년 후, 일반상대성이론이 등장한다. 관성 좌표계 이외의 모든 영역에 상대성 원리를 적용시킨 위대한 이론이 특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지 10년 만에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상대론은 현대물리학의 거의 모든 곳에서 쓰인다. 그 정도로 유명한 것이다. E=mc², 이것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상대성이론에서 시간과 공간 모두 변하지만 단 하나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빛의 속도, 광속이다. 광속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바꿔버린 셈이다. 고전역학에 따르면 알짜힘이 한 일의 양이 매우 커지면 운동에너지는 매우 커져야 하지만 속도가 광속 이상이 될 수는 없기 때문에 질량이 커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즉, 질량도 상대적이다. 일의 일부는 질량의 증가, 에너지의 또 다른 형태라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물체의 질량을 정지질량보다 증가한다.” 이것이 E=mc²를 의미하는 것이다. E는 에너지, m은 질량, c는 광속이다. 이 공식으로부터 원자폭탄이 시작되게 된다. 질량이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제작=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15기 서수민기자]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독일은 핵물리학이 발달한 나라였고 미국에 머물던 반나치 핵물리학자들은 독일이 1939년부터 원자폭탄을 개발한다면 1943년 전에 원자폭탄을 개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독일이 핵폭탄을 만들게 되면 안 될 거라 생각했던 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명의로 핵무기 개발 권고를 미국 정부에 제출했고, 미국 정부는 맨해튼 계획을 발동시켜 본격적으로 핵무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한 달 전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수 아인슈타인을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나치를 피해 독일에서 미국으로 온 헝가리 출신 물리학자 레오 스질라드였다. 나치의 물리학자들이 핵분열에 성공하였으며 연쇄반응 실험을 하고 있어 신무기를 만들 위험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발견한 E=mc²이 핵폭탄 개발의 원리가 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스질라드의 설명을 듣고 자신이 연구한 핵분열과 연쇄반응이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제조된 원자폭탄이 제조되고 독일은 핵폭탄을 제작하지도 못한 채 전쟁에 패배하게 되고 결국 원자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이르러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스질라드는 독일이 망한 후 핵폭탄이 일본에 투하될 것임이 확실해지자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이루어진 미국의 원자폭탄 제조 계획인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70명의 과학자들로부터 서명을 받아 1945년 7월 17일에 트루먼 대통령에게 핵무기 사용을 검토해달라는 탄원서를 냈지만 탄원서는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원자폭탄이 사용되었던 날 아인슈타인은 일생일대의 후회를 했다. 독일의 핵 개발 정보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을 합리화하며 말이다. 양자역학과 함께 현대물리학의 주축이며 병원에서 쓰는 PET, GPS 등 일상생활 곳곳에 퍼져있는 상대성이론을 만들어낸 아인슈타인은 상대론을 만들어낸 것에 자괴감을 느끼고 첨단 과학이 무기로 사용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IT·과학부=15기 서수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