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하여 헌법불합치 판결을 하였다. 많은 여성 단체가 해당 결정에 대하여 환영의 목소리를 높였고, 종교계에서는 낙태죄를 폐지하면 안 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낙태는 윤리적, 정치적, 사회적 논쟁거리로 많이 오르내렸던 주제이다. 인간의 생명과 선택에 있어서의 자유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이 사회적 흐름의 무늬를 그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김성수 대학생기자]
※위의 이미지는 낙태에 대한 종교들의 관점으로써, 대부분의 종교가 낙태에 부정적이고, 힌두교와 유대교 일부 교파만이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흰색은 입장 없음, 검은색은 저주, 빨간색은 부정, 파란색은 긍정을 뜻한다.
그런 의미에서 낙태 찬성론 측 사람들이 태아에 대한 관점을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자신은 한때 태아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부모가 자신을 낙태했을 경우에 자신의 모습은 매우 비참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았을 때, 하나의 생명이 또 다른 하나의 생명의 소모품이 될 수가 있는가에 대해서 깊게 성찰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Q1. 간단한 자기소개 한번 부탁드립니다.
A1. 저는 페이스북 ‘국민과 겨레를 사랑하는 모임’ 대표 운영자 한대성입니다. 현재 초기 인도 불교를 전공하고 있으며, 동국대 인도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인도에서 10여 년, 독일에서 2년간 유학하였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본격적으로 사회의 부조리와 아픔을 해결하고자 여러 활동을 하고 있고, 특히 페이스북, 아고라 등에서 정보교류와 교육을 통해 해결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활동에 한계를 느껴 지난 4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예비후보로 출마하였고, 앞으로도 사회적 문제 해결을 위해 정치적 해결책을 지속할 것입니다.
Q2. 낙태에 관련된 종합적인 입장 부탁드립니다.
A2. 원론적으로는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뱃속의 생명도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자궁 밖으로 나올 때 비로소 생명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지극히 법적인 개념입니다. 심장도 뛰고 생각도 하고 감정도 있는데 생명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생각은 현실적이진 못합니다. 과거 노예제도가 존재했을 당시에 합법이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노예가 죽임을 당했습니다만, 지금은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범죄가 되었습니다. 낙태도 '합법이다'라는 명분으로 생명을 죽이는 것이 과거 노예를 죽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고려하자면 강간 등을 통한 임신이나 임신 초기 낙태 등은 허용해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은 길고양이와 같은 동물들의 생명도 수많은 법적인 보호장치가 제공되고 있습니다. 자궁 속에 있다고 사람이 동물보다 못한 대우를 받는 것은 상당히 아이러니한 상황이라 생각됩니다. 한국의 경우 2019년 4월 11일 낙태죄에 대한 ‘헌법불합치’판결을 하였고, 2020년 10월 7일에 개정안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판결에도 불구하고 24주 이후에는 낙태를 불허하기에, 한국은 전형적으로 낙태 불허 국가이고, 그리하여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완전하게 인정해주지 않고 있기에, 기본적으로 필자의 생각은 최근 개정된 헌법과 법률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낙태 허용 여부를 ‘태아가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점인 임신 22주 내외’를 근거로 24주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 얼마나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진지한 논의가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Q3. 불교철학을 공부하신 분이니 잘 아시리라 생각됩니다만 <타태경(墮胎經)>에 나오는 낙태에 대한 문장에는 낙태자는 다음 생에서 그 부모가 낙태하게 된다고 밝혔습니다. 불교철학에서 생명의 무게를 매우 중히 다루고 있음은 자명한 사실이고, 다른 종교 역시 마찬가지로 낙태를 반대하는 입장이 많습니다. 2019년에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결정은 종교 규범과 법규범의 충돌이 일어난 사례라고 할 수 있고, 윤리적 논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낙태죄 여부를 떠나서 큰 규범 간의 가치충돌에서 사회구성원은 어떻게 협의해 나가야 할까요?
A3. 가치 충돌 상황에서 해결책은 크게 원칙을 따라야 하지만 소수 구성원의 의견을 충분히 배려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칙이란 것이 때로는 모호할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원칙이 있지만 원칙을 따르지 않는 것은 원칙 밖에서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원칙이란 것이 생겨날 때는 그것이 사회에서 가장 큰 이득을 가져다주기에 원칙으로 자리 잡힌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정선거 시비가 붙었을 때, 검증을 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혹은 세월호를 막대한 세금 낭비에도 불구하고 인양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충돌은 원칙적으로 생각한다면 쉽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 외의 가치 충돌 혹은 의견 충돌 상황은 크게 세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공리공론뿐인 충돌, 둘째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충돌, 셋째는 윤리파괴 혹은 기성 질서 혁신을 위한 충돌입니다. 공리공론뿐인 충돌은, 예를 들자면, 사회주의 배척에 관한 논쟁입니다. 과거 미소 냉전 시기에는 이데올로기 아래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기에, 현재에도 일말의 공포감이 잔존하는 것이 현실입니다만, 냉전이 공식적으로 종식된 지 이미 30여 년이 지났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국가보험 제도 같은 수많은 사회주의적인 제도가 존재하기에, 폭력혁명과 같은 극단적인 사회주의 이론을 제외한다면, 사회주의 배척을 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한국은 얼마나 사회주의적인 제도가 많고, 4.19혁명은 사회주의적이냐 아니냐를 논할 수도 있겠지만, 공리공론일 따름이라 생각합니다. 탈원전, 소득 주도 성장 같은 논쟁이 전형적인 현실과 이상 사이의 충돌입니다. 이 세상 모든 제도와 장치들은 부작용이 없을 수 없고, 원전도 핵물질 누출, 폐기물 처리 따위의 문제가 당연히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느 발전장치보다 현실적으로 효율적이기에, 불법행위를 마다하지 않고 탈원전을 제창해온 현 정부가 원전을 최대한 가동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윤리 파괴 혹은 기성 질서 혁신이라 한 것은 전통적으로 금기시되어오던 동성애나 성소수자의 양지화 같은 주제를 말한 것입니다. 미국을 포함한 과거 세계에서는 종교적인 이유로 수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문명사적인 거시적인 안목을 제외하고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찾기가 희박할 것입니다. 하지만 동성애와 성소수자의 양지화를 그것과 동등한 선에 놓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선 조금 더 신중해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오랜 대화와 토론을 통해서만 이 적절한 해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신중해야 할 것이라면 일단은 보수적인 혹은 전통적인 입장에서 서서히 바꿔가는 것이 현명하리라 생각됩니다. 어떤 가치와 행동규범이 그 사회에서 ‘옳은 것’ 혹은 ‘좋은 것’으로 인정받았을 때에는 그에 상응하는 이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Q4. 낙태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더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낙태 사이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질문드리고 싶으며, 있다면 왜 있는지, 없다면 왜 없는지 이유를 부탁드립니다.
A4. 자기결정권이란 국가권력으로부터 간섭 없이 일정한 사적 사항에 관하여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헌법상의 권리를 의미하는데, 현재 낙태죄 위헌판결도 헌법상의 자기결정권 침해에 근거한다고 판시하였기에, 낙태와 자기결정권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굳이 법률상의 이치를 따지지 않더라도, 자신의 몸을 변형시키는 성형수술 여부를 본인이 결정할 수 있듯, 자신의 몸에 종속된 자신의 몸의 일부인 태아를 제거하는 것을 본인이 결정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옳습니다. 낙태에 관한 문제에서 ‘자기결정권’은 어떤 해결책이 아니라 낙태를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일 뿐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여성은 본능적으로 낙태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낙태를 하고 평생을 죄책감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여성을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했습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는 이가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 또한 그리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여성이 낙태를 선택하는 것은 살생에 대한 죄책감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적인 여건이 받쳐주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자기결정권’ 운운하며 낙태 찬반 논쟁을 지속하는 것, 현실적 여건이 받쳐주지 않지만, 임신과 육아를 강요하는 것은 공리공론이거나 노예화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Q5. 일부 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현 저출산 시국에서 낙태를 풀면 저출산이 가속화될 것이다”라는 의견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 주장에 대해서 “그렇다면 출산율이 과하게 높아지는 문제가 발생하면 낙태를 완전히 허용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할 수 있다는 의견 또한 나오고 있으며, 이에 따라서 반대 측에서는 찬성 측에 도움을 줄 수도 있는 근거라고 하는데요, 이 근거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A5. 필자는 기본적으로 낙태에 반대하는 것은 태아 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에 관한 것을 공리론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상당히 부도덕하고 불쾌한 발상입니다. 마치 바다에 빠진 이를 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 혹은 세월호를 인양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경제논리로 따지는 것과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국가적 이유,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출산과 양육이라는 개인에게 무한한 의무와 고통을 강요하는 것은 국가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저출산 문제 때문에 국가가 임신을 폭력적으로 강제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국민은 가축이 아니라 사람이기에, 국가가 국가적 이유로 강제적으로 임신시키거나 낙태시키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Q6. 앞으로 낙태 논쟁에서 사회적으로 어떻게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까요?
A6. 반복되는 말이지만, 기본적으로 살생을 즐기고 낙태를 위한 낙태를 옹호하는 사람, 사람 중에서도 특히 여성은 거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낙태에 관해 ‘자기결정권’ 등의 사상적‧철학적 논쟁은 공리공론에 가깝습니다. 페미니즘 정권을 천명하였고,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을 이끌어 낸 문재인 정권이 24주 이후 낙태 불가를 고집하며 낙태를 엄벌하겠다고 한 전 박근혜 정권에 비해 거의 나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은 법적으로 혹은 국가적으로 논쟁을 더 이상 향상시킬 수 없었음을 반증한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에 관한 복잡한 문제에 있어서 합의에 의한 극적인 의견 도출에 대한 기대는 현실적이지 않고, 극렬 페미니즘 정권을 자처한 문재인 정권이 도출해낸 결론은 사실상 우리 사회의 최선의 합의라고 판단됩니다. 따라서 더 이상의 논쟁이나 합의로 극적인 해결책이 나오리라고 보이지 않습니다. 논쟁이나 합의보다 사회에서 더 필요로 하는 것은 해결책입니다. 현실적이고 거의 유일한 해결책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합니다. 첫째는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서 낙태를 스스로 포기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낙태가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원하지 않는 선택을 하는 것임을 감안한다면 큰 효과를 바라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 나은 두 번째 해결책은 국가가 나서서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을 극소화시키고, 예비 엄마에 경제적 지원 등을 통한 현실적인 출산과 양육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Q7.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부탁드립니다.
A7.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것 즉 생명이라 생각합니다. 남의 생명 또한 존중하고 보호해야 하는데, 태아의 생명 혹은 자기 뱃속에 든 생명에 두말할 나위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입법 행정 관련자들 또한 ‘법적인 혹은 강제적 제제’보다는 예비 엄마가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현실적 해결책을 만들어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세월호 참사가 분수령이 되어 우리 사회는 학업에 전념해야 할 젊은 철학자가 사회와 정치에 뛰어들어야 할 만큼 아프고 피폐해졌습니다.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억울한 죽음이 없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되찾을 수 있도록 나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렇듯 낙태를 바라볼 때에는, 누군가의 생명과 관계된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문제의 답을 제시할 때에 합리적 절차를 거치지도, 구성원의 합의를 이끌어내지도 않는다면 사회는 진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사회부=3기 대학생기자 김성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