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신 이순덕 할머니께서 향년 100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 이순덕 할머니께서는 위안부 피해자 중 가장 연세가 많으셨다. 하지만 문제 해결을 위해서 치열하게 노력하셨고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분이셨다. 이순덕 할머니의 빈소가 한산하다는 소식을 듣고 신촌 세브란스병원 인근 대학교의 대학생들이 고인의 마지막을 추모했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안유빈기자]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시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함께 부당함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날마다 기거하며 투쟁하는 소녀상농성 대학생공동행동이 있다.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이 타결된 후로부터 2017년 4월 17일 기준으로 476일 동안 자리를 떠나지 않는 대학생들이 있었다. 취재를 했던 4월 17일은 봄비 치고는 많은 양의 비가 하늘에서 내리던 날이었다. 그런 찝찝한 환경 속에서도 일본 외무성의 사죄와 불가역적이고 매국적인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폐기라는 정의를 위해서 포기하지 않는 개결한 의지가 놀랍다.
이순덕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에 해양수산부는 세월호가 거치된 잠수선에서 펄 제거 작업을 하면서 유류품을 수습한 결과로 신발 12점과 의류 2점 등 21점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3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세월호는 아직 우리의 가슴 속에는 참사로 기억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 때문에 인간적으로 마땅히 슬퍼해야 하고 위로해야 할 것이 정치 쟁점화되었고 국론이 반으로 분열되었다. 이 때문에 모두가 세월호 참사가 말끔하게 처리된 사건이 아니라 참사로 기억하는 이유일 것이다.
4월 15일에는 22번째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기념하고 미수습자 수습과 철저한 선체조사, 책임자 처벌을 위해 주권자들이 다시 모였다. 죄를 지은 사람이 그에 응당한 징벌을 아직 받지 않았고 배 안에는 구원하지 못한 미수습자가 남아있다. 그리고 배가 차가운 바다로 빠지고 있던 당시에 책임자의 소재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미수습자와 희생자 유가족 입장에는 분통이 터지고 답답한 심정을 감출 수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편안함이 머지않기를 바란다. 국민에게 비정의와 실망만을 남긴 자는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는 위안부 할머니들과 세월호 유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을 꽃길만 걷게 해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원한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정치부=4기 안유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