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동네’란 1976년 오웅진 신부가 걸인·무의탁 심신장애자 등의 요양 목적으로 충청북도 음성군에 설립한 사회 복지 시설로, 현재 전국에 시설이 분포하여 있다. 그중 하나인 신내동 꽃동네 (이하 신내 노인 요양원)을 취재 겸 봉사차 방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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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랑구 신내동에 위치한 ‘신내동 꽃동네’는 5개의 층에 걸쳐 220명가량의 인원을 수용하고 있다. 음성에 위치한 꽃동네 본원은 걸인, 장애인, 고아, 노인 등 다양한 인원을 수용하는 복지 시설이나, 신내동 꽃동네는 주로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요양원 형태의 모습이었다. 학생 봉사자들은 주로 청소와 주방보조, 말벗 등 어르신들의 일상생활 보조를 맡는다.
“부탁하나 드리고싶어요. 어르신들의 손을 한 번만 잡아주세요. 어쩔 때는 손을 잡아주시면 우시는 경우가 있어요. 너무 좋으셔서. 어르신들의 손이 생각보다 따뜻하거든요, 잡아줄 사람이 없어 그렇지…. 부탁드리건대 오늘 어르신들 손 한 번씩만 잡아주시고 가주세요”
[신내동 꽃동네 사회복지사 선생님과의 대화 中]
치매 노인이 대다수인 시설로 불리기에 봉사교육 현장의 학생 봉사자들의 눈에는 거부감 미처 지워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각자의 층을 배정받은 후, 생각보다 넓은 시설을 걸레질부터 시작했다. 행여 어르신들이 넘어지실까 이미 마른 바닥도 한 번 더 닦고, 행여 어르신들이 감기라도 걸리실까 구석구석의 먼지까지 손걸레로 닦았다. 이 과정에서 몇몇 어르신들이 말을 걸어오셨다. 명찰에 적힌 이름을 정성스레 한 글자씩 불러주시는 분부터, 소리를 지르시며 욕을 하시는 분 까지.. 이제야 온 거냐고 오랜만이라며 활짝 웃어주시는 분들도 계시어 가슴이 시큰했다. 3분의 2 정도의 어르신은 종일 누워계셨고, 다른 분들은 보조기구나 휠체어에 의존하여 시설 내부를 다니셨다. 외부를 나가시는 일은 잘 없어서 답답하시면 시설 복도를 끝에서 끝까지 몇 번이고 걸으신다고 한다. 청소가 끝난 후에 약한 치매나 혹은 정신이 온전하신 분들과는 노래를 불러드리거나 말벗을 해드렸고, 중증 치매이신 분이나 거동을 하실 수 없는 분들과는 눈을 맞추며 천천히 말을 걸고 손을 잡아 드렸다. 비록 치매를 앓고 계시나, 손을 잡아 드리니 눈이 휘어지며 해맑게 웃으시는 모습들이 마치 소녀 같으셨다. 놀랍게도 어르신들의 손은 정말로 부드럽고도 따뜻했다.
“우리 손자는…. 손자 이름이 00인데…. 내가 초등학교 입학식 중학교 입학식 고등학교 입학식을 다 다녔어. 걔한테는 내가 엄마야 엄마…. 공부는 또 얼마나 잘하는지 전교 1등을 다 하구. 00이가…. 그러니까 우리 손자 이름이 00인데 애가 그렇게 똑똑하다. 3대 독자라 내가 걔한테 못 해준 게 없어…. 다 해줬지. 전에 전화로 면회 한번 오라고 했는데 오지를 않아…. 아직도 오지를 않아….”
[신내동 꽃동네 최00 할머님과의 대화 中]
꽃동네에 계시는 어르신들은 물론 거동이 불편하시어 가정에서 함께하기 어려울 수 있는 분들도 계셨지만, 말씀도 잘하시고 정신도 온전하시며 심지어 시사상식에 능통하시고 영어와 일본어를 구사하시는 분들 또한 계셨다. 그런 대부분의 어르신은 제법 쾌적한 요양원의 시설과 다정한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손길을 받고 있지만, 가족을 그리워하시는 모습이었다. 40분도 넘게 손자와 아들 이야기를 하시던 최00 할머님은 손자의 이름을 계속 말씀하시는 걸 빼면 치매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온전한 정신이셨다. 대화 동안 10번은 다시 말씀하시던 손자의 이름은 어쩌면 치매가 아니라 그리움에서 비롯한 것이 아닐까.
요양원 입소가 오히려 노인들을 위한 선택이라고 믿는 보호자들은, 어르신들로 하여금 평생을 헌신한 가족들을 떨어뜨려 놓는다. 어르신들에게는 윤이나는 바닥과 전문가 선생님들의 24시간 보살핌보다는 가족들과의 대화 한마디가 더 소중하지 않을까. 누군가의 어머니 아버지셨고 언젠가는 소년 소녀셨을 그분들에게는, 여전히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줄 사랑하는 이가 절실하다. 그분들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며 어떤 남도 대신할 수 없는 가족의 정을 회복해야 할 때이지 않을까.
[대한민국 청소년 기자단 사회부=4기 백정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