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7월 15일, 수많은 군중이 모여있는 버니 샌더스의 포틀랜드 선거 캠페인 장소에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참가자 버니 샌더스가 물었다.
“왜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캠페인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면서 환호를 보낼까요? 왜 풀뿌리 모임들, 각 지역의 시민들의 소액기부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25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선거운동을 지원해주는 걸까요?”
그러자, 한 남자가 방청석에서 벌떡 일어나 그에게 소리쳤다.
“Because you are right, Bernie. You are right!(당신이 옳기 때문입니다 버니, 당신이 옳아요!)"
(관련영상:https://www.youtube.com/watch v=t-oAvsk_PHw)
안타깝게도, 이런 열광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말해 이제 샌더스가 더 이상 판도를 뒤집는 일을 힘들어 보인다. 공화당은 도널드 트럼프가 전당대회가 열리지 않는 이상 후보로서 지명되는 것이 거의 확실시 되고,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은 슈퍼 대의원들의 압도적인 지지로서 버니 샌더스를 큰 폭으로 따돌리고 민주당 대표로 대통령 경선에 나갈 것이 기정 사실화 되었다.
하지만, 샌더스의 여정은 이미 그 자체로 존중 받아야 할 위대한 21세기의 정치혁명이다. 2016 4월 현재, 무명의 버몬트 주 주지사는 소액 기부와 풀뿌리 모임 지지를 기반으로 힐러리를 위협하는 영향력 있는 정치인이 되었다. 그의 철학은 그가 트위터에 올린 이 간단한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주 40시간을 일하는 사람이 가난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결코 급진적인 발상이 아닙니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버니 샌더스는 포퓰리스트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공약들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논리적인 예산안을 준비하며 그를 공격하는 수많은 후보들의 공격을 반박하고 있고, 이 와중에도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전략은 결코 사용하지 않는다는 본인의 신념을 강력하게 주지하면서 대중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신뢰도 높은 통계들을 차분하게 정리하여 미국사회의 팽배해있는 불평등을 차분하게 짚어내면서,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경제정책들을 주장하는 버니 샌더스의 카리스마적인 모습은 특히 저소득층 중에서도 특히 백인 유권자들의 발걸음을 투표소로 옮기게 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안타깝게도 이제 샌더스의 대선후보 지명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졌다. 하지만, 1%에 맞서는 99%의 대변인 버니 샌더스는 극심해진 빈부격차에 실망한 수많은 미국인들의 마음에 희망을 불어넣었고, 자본주의 상징과도 같은 월스트리트의 국가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가 받고 있는 지지는 미국의 선진적인 정치 문화와 시민의식을 짐작케 할 수 있다. 샌더스는 결코 패배하지 않았다. 그는 모두의 시민의식을 일깨우고 정치혁명을 일으킨 선구자이며, 대한민국의 수많은 숙제들을 차분히 돌아볼 계기를 준 진정한 "정치인"이다.
아직까지 민주적인 절차와 행정방식과는 거리가 먼 한국의 현실은,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들고 나온 샌더스에게도 충분한 존중과 토론절차를 보장해주던 미국의 현실과 상당한 괴리감이?있다. 어제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언론 간담회는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낼 만큼 미숙한 언행들로 자리에 참여한 언론인들 뿐만 아니라 기사로서 대통령의 발언을 접한 대중들에게도 아쉬움을 남겼다. 대통령의 여러 가지 발언 속 언어선택들에 내재된 가치관을 들여다 보면 아직 성숙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정치의식을 볼 수 있다. 우선, 20대 총선의 패배의 책임을 “국회 양당체제”에 돌리는 듯한 대통령의 발언에서 아직도 민심의 향방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 분명한 대통령의 모습은 아쉬움을 남겼으며, 본인의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지 못하게 된 상황에 “한”이 남을 것같다는 발언은 민주사회의 기본인 삼권분립을 숙지하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혹자의 우려를 사고 있다.
입법부의 존재는 행정부를 도와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견제하고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있는 것이나,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판단에 반대하는 국회의 판단을 정당한 민주적 절차가 아닌 방해로만 묘사를 하고 있는 현 정국에 안타까움을 거둘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끊임없는 토론으로서 정책에 대한 토의가 지속적이고 꾸준히 이루어지고 국민의 여론도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선진형 입법절차가 아닌, 과반이 넘는 반대가 있음에도 국정교과서, 한.일 위안부합의, 세월호 특별법, 테러방지법 등의 굵직한 오점들을 행정부의 수반이 권력남용에 가까운 독단과 압박을 통해서 통과시키는 모습을 우리가 보는 올바른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또한 아직도 유력인사를 위주로 코드에 따른 정치를 보며 국민들이 많은 실망을 했음은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친박, 진박, 비박등으로 계파를 나누어 코드에 맞는 인사에게 공천에 특혜를 주고, 행정부의 수반또한 여당과 청와대에 쓴소리를 하고 당간의 화합과 협력을 강조한 여당의 원내대표에게 “배신의 정치”라는 이름을 붙이며 독특한 논리로 비판하여 결국 원내대표직을 사퇴하게 한 일들은 국민을 우롱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번 여소야대 정국은, 국민들이 냉정하게 차악을 뽑아 야당이 어부지리를 얻은것이지 야당의 정치적 비전과 신념이 도움이 되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크다. 특정 코드의 인사를 위주로 당을 장악하고자 하는 모습은 제 1 야당 또한 여당과 차이가 없고, 19대 국회에서 그저 식물처럼 여당의 정책에 저항하지 못하고 끌려가기만 하는 야당의 모습은 국민들의 기대 속 강한 야당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번 총선의 충격적인 결과를 보고 양당이 느낀바가 있어 선진적인 민주정치를 추구하기를 국민의 일원으로서 바랄 뿐이다. 미국 역시 미국의 문제가 있고, 뿌리깊은 월가와 백악관의 유착, 또 밝혀지지 않은 비리와 불합리성이 분명히 있지만, 적어도 그 누구도 누군가가 오바마를 옹호한다고 흑인일 것이라고 단정지어 버리지도 않고, 그 어떤 어버이들의 연합도 샌더스에게 공산주의자라며 색깔론을 들이밀어 원색적인 비난을 가하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청소년 기자단 국제부 3기 박정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