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3기 김미래기자,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 위안부 이야기
위안부란, 세계 제 2차 대전 동안 일본이 전쟁을 효율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설치한 위안소에 강제 동원 되어 일본군의 성노예 생활을 했던 여성들을 일컫는 말이다. 위안부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공개되고, 문제로 인식된 것은 1990년대 부터이다. 이전의 한국 사회에서는 지금처럼 위안부 문제가 주목 받지 못했으며, 따라서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대처가 이루어지지 못한 바 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1991년, 피해자 김학순 씨가 위안부였음을 밝으며 일본의 책임을 고발하면서 정부의 대책 마련이 논의되고, 시민들 또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권리를 되찾기 위해 계속 되는 투쟁
지난 2월 17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는 어김없이 한국 정신대문제 대책 협의회(이하 정대협)가 주관하는 수요집회가 열렸다. '수요집회'는 1992년 1월 8일 처음 시작된 시위로써, 일본의 전 미야자와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누구나 참여가 가능한 이 집회를 통해, 시민들은 일본정부의 전쟁범죄를 인정하고 공식적인 진상규명 및 사과를 요구한다. 또한 법적 배상 및 이에 관련된 전범자들에 대한 처벌, 이외에도 역사교과서에 위안부 문제를 기록할 것과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추모 사업을 진행할 것을 주장한다.
많은 시민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작년 12월 28일에는 ‘12·28 위안부 합의’가 열렸다. 긴 시간동안의 노력의 결실이 맺어지는 듯 했지만, 정대협은 합의에 이의를 제기하며 합의 무효화 투쟁을 실시할 것으로 밝혔으며, 수요집회는 물론 논란이 붉어진 소녀상 이전에 대해서도 강한 반발을 보였다. 특히 소녀상 이전 문제에 대해서 반대하는 시민들은 소녀상 지킴이를 자청하여 직접 소녀상 이전 반대 의사를 표하기도 하고 있으며, 2월 17일 당일에도 수요 시위 및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위해 참가한 시민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당일, 시위에 참가했던 중학교 3학년 이예린 학생은 "대학생들이 벌이는 농성 시위를 보고 스스로가 비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직접 시위에 참가하게 되었다"라고 밝혔으며, "이미 많은 피해자 할머니들이 돌아가셨다, 정부는 더 이상 피해자 할머니들이 당시의 아픔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일본 또한 합의를 무효화하고, 공식적이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시위에 참가한 또 다른 참가자 신상현(32)씨는 "위안부 합의 이후, 대학생 농성시위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열악한 환경으로 힘들어 하는 대학생들의 소식을 들었다. 이를 돕고자 처음 시위에 참여했고, 시위를 지지하는 시민들의 지원으로 계획적인 시위가 이루어지면서, 정기적으로 참가하게 되었다"며 참가 계기를 밝혔다. 또, "진정한 피해자의 입장에서, 정확한 역사를 기초로 재평가하는 합의가 다시 이루워져야 한다", "지금의 사회가 있도록 한 변화들은 대부분 학생들의 참여로 시작되었다. 이번 문제 또한 대학생들이 먼저 나서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서 시민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한다"고 이야기 했다.
여전히 위안부 문제에 관한 논의는 이어지고 있으며, 적지 않은 시민들이 정부의 시급한 대책안 마련을 촉구 중이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사회부=3기 김미래기자]
좋은 기사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