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기념물 제91호인 면천읍성 성곽 일부가 복원되었다. 복원된 구간은 치성을 하나 포함하여 남문과 서문터 사이에 있는 성곽으로 길이는 141m, 높이 4.6m다. 당진시는 2016년 토지 매입 및 지장물 조사를 하고 2018년부터 2020년 12월까지 복원 공사를 완료했다. 사업비로 64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이번에 복원된 성곽의 모습이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석종희 대학생기자]
본래 전체 성곽 길이는 약 1,200m이며, 높이는 약 3.5m다. 성곽은 전체적으로 사각형과 유사한 타원형 형태였다. 성곽에는 7개의 치성이 있었으며 동문, 남문, 서문 이렇게 총 3개의 문이 있었다. 이 중 남문은 옹성 형태로 복원되어 남아있다. 동문과 서문을 남아있지 않지만, 주변에 남아있는 흔적을 통해 위치만 짐작 할 수 있다. 현재 예전에 복원한 남문과 그 주변 일부 구간이 있고, 이번에 복원한 남문부터 서문터 사이 구간이 있다. 나머지 성곽은 대부분 약간의 흔적만 있거나 부분적으로 원형이 남아있다.
△부분적으로 남아 있는 기존 성곽으로 서문터 근처에 있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석종희 대학생기자]
면천읍성은조선 초기 1439년(세종 21년)에 축조된 읍성이다. 당시 조선은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고자 읍성을 축조했다. 면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해안가 일대와 지방의 큰 고을에는 대대적으로 읍성 축조 및 보수를 했다. 충청남도 서해안 지역인 해미, 태안, 서산, 홍주, 결성, 충청수영성 등 수 많은 읍성이 축조되거나 보수되었다. 지금은 해미읍성, 낙안읍성, 경주읍성처럼 유명한 곳만 소수가 남아 있지만, 당시 조선에는 읍성이 굉장히 흔했다.
읍성은 방어기능뿐만 아니라 지방의 행정, 정치, 상업의 중심지였다. 지금의 시(市)·군(郡)인 기초 지방자치단체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다. 읍성 내부에는 정치 및 행정시설인 동헌, 객사, 내아가 있었다. 또한 행정을 위한 부속 시설과 창고 등이 입지했다. 이 외에 서민들이 사는 주거 지역들과 곳곳에 있었다. 또한 시장이 있어 지역의 상업 중심지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관리가 소홀해지면서 조선 후기에는 읍성이 부실한 경우가 많았다. 결정적으로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도시 개발 명목으로 강제적으로 대다수 읍성이 철거를 당했다. 이때 대다수 읍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많았다. 철거된 읍성의 성곽 돌은 도시 개발이나 건축을 위한 석자재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읍성 내부의 객사, 동헌, 내아와 같은 시설들도 철거되었으며 대다수 면사무소나 학교 등과 같은 행정 및 교육 시설로 변경되었다. 면천읍성 역시 지금은 읍성 밖으로 이전한 구 면사무소 터와 구 면천초등학교 터가 동헌과 객사가 있던 곳이다.
읍성은 과거 선조들이 남겨준 소중한 유산이며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 담긴 공간이기 때문에 복원하는 일은 중요하다. 지금도 대다수 읍성이 남은 흔적들이 방치되거나 흔적조차도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일부 지자체들은 읍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일부 지역은 단계적으로 복원 사업에 착수했다.
△객사 복원을 위해 기존에 있던 구 면천초등학교를 철거한 모습이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석종희 대학생기자]
당진시 역시 면천읍성 복원 사업을 계속 추진한다. 올해에는 남문 동쪽 성벽 일부 구간과 치성 하나를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객사를 올해 3월 착공해 12월에 사업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복원을 위해 구 면사무소와 구 면천초등학교 건물은 철거된 상태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사회부=1기 대학생기자 석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