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신유정기자]
세계 최고의 대학이라 불리는 하버드 생들도 어려워하는 영어 문제를 풀어내는 일반 학생들이 가득하지만 실생활에 쓰이는 쉬운 영어는 어려워하는 나라. 실제로 외국인을 만나면 실수할까 두려워하며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하는 ‘벙어리 영어’는 현재 우리나라 영어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런 ‘벙어리 영어’는 문법 위주의 교육과 실생활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고급 어휘들을 무조건적으로 암기해야만 문제를 풀 수 있는 구조 등이 원인으로 꼽히는데, 이런 우리 영어교육의 문제점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청나라 관리의 통역으로 ‘조미수호통상조약 (1882)’을 맺은 후 미국과 교류하며 신문물을 접하게 된 조선은 영어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인지하게 되었다. 특히, 최초의 근대식 공립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은 조선이 높은 수준의 영어 교육을 실시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데, 육영공원에서는 해외 명문대 출신의 원어민 교사를 채용하고 모든 과목을 영어로 말하고 읽고 쓰는 ‘교이 영문 영어의 원칙’을 세워 조선인들이 높은 회화 수준을 가지게 하였다.
또한 그 시기 조선에서는 신분의 높고 낮음을 구별하지 않고 심지어 여자까지도 영어 교육에 힘을 쏟았으며 해외에서는 이런 조선인들을 동양에서 가장 뛰어난 어학자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렇게 조선에서 영어교육을 받은 젊은 관리들은 선진문물을 수용해 조선의 개화를 이끌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외교권이 박탈되고 일제 통감부가 설치되었으며 일제에 의한 대대적인 교육제도 개편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 교사가 영어를 가르치게 되면서 제대로 된 회화는 익힐 수 없게 되었고 영어를 일본어로 번역하는데 초점이 맞춰진 문법과 독해 수업은 뛰어났던 조선학생들의 영어 실력을 빠르게 퇴보시켰다.
이런 수업방식은 일제로부터 해방한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벙어리 영어’를 고착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우리의 영어교육을 퇴보시킨 일본을 탓할 것만이 아니라 이러한 일본의 잔재를 버리고 새로이 우리에게 맞는 교육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옛날, 조선인들이 지녔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사회부=4기 신유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