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칼럼>영화 읽어주는 고양이 세 번째 이야기: 레이디 버드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7기 남연우기자]
이 이야기는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이다. 미국 새크라멘토에서 평생을 살아온 크리스틴(레이디 버드)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이다.
레이디 버드는 학교공부에 대해서 불평하고, 친구와 다투었다가 화해하고, 대학에 관해서 불평하고, 반의 퀸카를 동경하고, 남자친구를 사귀었다가 헤어지는 등 여느 18세와 같이 고등학생 생활을 즐긴다. 그런 레이디 버드의 가장 큰 소망은 자신이 지겹게도 보아온 새크라멘토를 벗어나 뉴욕으로 대학교를 가는 것이다.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그는 본명인 크리스틴 대신 ‘레이디 버드’로 불리기를 고수하고, 지속적으로 타인에게 자신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아주 열심히, 부정한다. 레이디 버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자신이 동경하는 것들을 자신의 것인 양 거짓말한다. 학교의 퀸카인 제나에게는 자신이 동경하는 3층 주택을 자신의 집이라고 소개하고, 자신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친구 줄리 대신 아이들의 동경을 받는 카일, 제나와 어울려 다니며 자기를 끼워맞춘다.
이 영화는 어른도 아이도 아닌 시기의 혼란을 솔직하게, 묵묵하게 그려낸다. 어쩌면 흔한 이야기에 그칠 수 있었던 이야기를 그레타 거윅(감독이자 각본가)은 인물의 매력과 촘촘한 감정선,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만한 것들로 채워 넣는다. 일반적인 성장영화화는 다른 <레이디 버드>의 매력적인 특징은, 이 영화가 지극히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레이디 버드에게는 졸업파티에 함께 갈 잘생기고 반듯한 남자가 생기지도, 인기 많은 친구가 생기지도 않으며 집안의 위기가 해결되거나 자아를 찾아서 안정적인 마음을 되찾는 것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영화가 끝날 때까지 레이디 버드는 그 자신으로 남아있다. 단지 레이디 버드, 그러니까 크리스틴 그 자신으로 말이다.
결국 바라는 대로 뉴욕에 도착한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방에 짐을 풀고도 공허감을 지우지 못한 채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응급실에 실려 간다. 다음 날 아침, 레이디 버드는 자신이 고등학교 내내 혐오했던 성당에 제 발로 찾아가서 노래하는 성가대 학생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러고는 집에 전화를 건다. 지겹기만 해던 새크라멘토가, 처음 운전을 해서 내다보니 아름다워 보였다고, 자신은 크리스틴이라는 자신의 이름이 참 좋다고. 그 모든 감정을 딛고, 레이디 버드는 드디어 크리스틴과 새크라멘토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인다.
레이디 버드는 자신의 인생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을 계속해서 느낀다. 때문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경험을 좇고, 지금까지는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려고 노력하며, 완전히 다른 장소에 가서 사는 것을 꿈꾼다. 어떻게 보면, 모두가 그걸 바라는 것이 아닐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내일 자고 일어나면 완전히 새로운 자신으로 탈바꿈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 가든, 어떤 일을 하든 나는 나일 뿐이다. 그것은 내가 어디를 가든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바뀌고 싶다면, 내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굳이 새로운 사람이 될 필요가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 자신 그대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딱히 무엇이라고 정의 내릴 필요 없는 ‘나’만으로도 말이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문화부=7기 남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