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계에 ‘혁명’을 일으킨다. 과학도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일일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턴, 아인슈타인 등 이 시대에서 존경받는 과학자들은 모두 과학의 혁명을 이룩한 학자들이다. 꼭 혁명을 일으켜야만 위대하며 존경받을 학자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혁명이 아니더라도 인간 세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학자들은 오늘도 어디에선가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들의 노력은 우리 사회에 녹아들고, 과학의 점진적인 발전을 도모한다.
우리는 흔히 혁명을 정치적인 방식으로 생각한다. 미국 혁명, 프랑스 혁명, 러시아 혁명 등이 이런 사례이다. 이런 혁명을 통해서 과거의 모든 것이 전복되고, 새로운 질서가 시작된다. 절대왕정에서 민주주의로, 봉건제에서 평등한 사회로 바뀌는 등 우리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혁명을 통해 우리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사회를 이끌었다. 이러한 혁명의 개념을 과학에 처음으로 제시한 사상가는 임마누엘 칸트라고 소개된다.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쿤(Thomas Samuel Kuhn, 1922년 7월 18일~1996년 6월 17일)은 자신의 저서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 과학혁명의 과정에 대한 견해를 제시한다. 과학에서도 혁명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밝히기보다는, 과학에서 혁명과 같은 급진적 변화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7기 신온유기자]
과학에서의 ‘혁명’은 앞서 언급한, 일상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와는 내재된 뜻이 다르다. 패러다임(paradigm)은 어떤 한 시대 사람들의 견해나 사고를 근본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테두리로서의 인식의 체계, 또는 사물에 대한 이론적인 틀이나 체계를 의미하는 개념이다.
토머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처음으로 제안한 패러다임은 한 시대의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이론이나 방법, 문제의식 등의 체계를 뜻한다. 쿤은 과학의 혁명이 특정 시기의 어떤 과학자들이 지키려고 고집하는 전통, 즉 패러다임이 지켜지는 과정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쿤의 이러한 주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과학자 공동체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덕에 도전한다.
그 미덕에 대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새로운 가설이나 발견이 등장했을 때, 과학자 공동체는 토론, 논쟁, 검증을 통해서 가설을 기각하거나 발견의 오류를 짚는다. 이런 혹독한 검증 과정을 거치고 나서도 살아남는 것이 비로소 과학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설명대로라면, 과학은 검증 과정에서 살아남은 것들이 조금씩 축적되면서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가설이나 예상치 못한 발견은 과학의 진보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쿤은 비판에 ‘열린’ 태도가 아닌, ‘닫힌’ 태도가 과학 발전의 실체라고 설명한다. 그는 과학자들이 이렇게 특정한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그 틀 안에서 연구하는 모습을 정상 과학이라고 정의했던 것이다. 쿤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예시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오페라(The Oscillation Project with Emulsion-tRacking Apparatus)에서 발표한 ‘뉴트리노’사건이다. 이 사건은 2011년 과학계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뉴트리노는 세상을 구성하는 입자 중 하나로, 한때 빛보다 빠른 물질로 알려졌었다. 스위스 제네바 근처의 세른에서 약 730킬로미터 떨어진 이탈리아 그란사소까지 뉴트리노 빔을 쏘아 속도를 측정한 결과, 빛보다 약 1억 분의 6초(60나노초) 빠른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과학자들뿐만 아니라 과학사를 다시 쓸 만한 발견을 한 오페라 과학자들조차도 연구결과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상대성 이론이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과학 활동을 하는 학자로서, 그것을 무너뜨릴 자신들의 연구결과는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실험에 참여했던 몇몇은 발표 논문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을 정도였다.
결국 오페라 측은 뉴트리노의 속도 측정에 영향을 준 오류를 확인했고, 그 결과 빛보다 빠른 물질의 발견은 6개월 만에 해프닝으로 밝혀졌다. 빛이 세상에서 가장 빠른 입자라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유지된 것이다. 여기에서 특이한 점은, 빛보다 빠른 물질을 발견한 연구진조차도 자신들이 발견한 물질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실험한 결과를 부정할 정도로 기존에 존재하던 패러다임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또 다른 예로는 천왕성과 해왕성의 발견을 들 수 있다. 뉴턴 이래로 과학자들은 고전 역학을 받아들여 우주의 운동을 설명했다. 그런데 윌리엄 허셜(William Herschel, 1738년 11월 15일~1822년 8월 25일)이 망원경으로 지구보다 63배나 큰 태양계의 일곱 번째 행성을 발견하면서 패러다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그 행성은 천왕성으로, 천왕성의 궤도는 당시의 고전 역학을 따르지 않았다. 고전 역학이 틀렸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그때 과학자들은 고전 역학에 의문을 제기하는 대신, 패러다임을 지키기 위해 과감한 해법을 내놓았다. 바로 천왕성 바깥에 또 다른 행성이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을 제시한 것이다. 무리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이 가정은 1846년 독일의 요한 갈레가 해왕성을 발견하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고전 역학을 지키려는 노력은 해왕성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기존 패러다임(고전 역학)은 더욱 강해졌고, 과학의 진보가 이뤄졌다. 쿤은 이 과정을 이렇게 요약한다.
“정상 과학은 패러다임이 미리 만들어 놓은 비교적 경직된 상자에 자연을 처넣으려는 노력이다.” -토마스 쿤, ‘과학혁명의 구조’ 중에서
그리고 그는 과학자들이 자신의 패러다임을 온갖 비판으로부터 지키려는 노력이 과학 활동의 진짜 모습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기존에 존재하는 패러다임은 새로운 발견의 수용을 막는 절대적인 벽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패러다임은 그 역시도 충분한 비판과 수용의 과정을 거쳐 자리매김한 것이다. 따라서 이미 존재하는 고유한 패러다임에 대해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전 연구의 축척물인 패러다임들의 존재가 과학이라는 배의 방향키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허무맹랑하거나, 비과학적인 연구결과들이 학계에 나오게 되더라도, 기존의 패러다임을 기본적인 판단의 근거로 삼아 쉽게 제외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쿤은 위에서 설명한 대로 과학혁명이 기존의 패러다임을 유지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영국의 철학자 카를 라이문트 포퍼(Karl Raimund Popper, 1902년 7월 28일~1994년 9월 17일)이다. 포퍼는 쿤 이전까지 가장 영향력 있던 과학철학자였다. 그는 추측과 논박을 통해서 과학의 혁명이 진행된다고 주장했다. 끊임없이 회의하며 비판하는 시각이야말로 과학의 본질이며, 인류가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가져야 할 이상적인 태도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렇듯 ‘혁명’의 과정을 설명하는 방식에는 견해가 갈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혁명은 그 결과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해오던 하나의 개념을 뒤집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만 보았을 때에도 충분히 존경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은 결과라는 달콤함을 모두 덮기 무색할 정도로 까다로우며, 어렵다. 연구 결과에 따른 주장은 여러 비판을 뚫을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해야 한다.
지금도 과학계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주장이 제기된다. 연구 결과 끝에 탄생하는 이 주장은 또다시 패러다임을 뒤흔든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의 주장이 패러다임으로써 인정받기까지 많은 논쟁을 거친다는 점이며, 이 결과 밝혀낸 패러다임은 인류가 미지의 세계에 한 발 더 가까워졌음을 의미하는 지표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IT·과학부=7기 신온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