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하영은기자]
올해로 약 1년이 되어가는 ‘미투(MeToo)’운동. 이 운동으로 인해 각계 고위층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 많은 남성들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어 우리 사회에는 많은 파문이 있었다. 언론에서는 앞다투어 미투운동에 대해 보도하기 바빴다. 미투운동 뿐만 아니라 여타 성범죄 사건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언론이 충분한 고려 없이 성범죄 사건에 대해서 보도하게 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언론이 성범죄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언론에 의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언론인은 어떤 자세로 성범죄 사건을 보도해야 할까? 우선 언론으로 인한 2차 피해의 원인과 유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언론으로 인한 2차 피해의 원인과 유형
1.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자의 신상 노출
성폭력 피해 사실 보도와는 관계없는 피해자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2차 피해의 문제가 된다. 일부 언론사는 실명과 나이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학력, 거주지, 직업 등을 상세하게 밝혀 피해자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유도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의 신상은 많은 사람에게 노출되었다. 피해자의 사생활이 침해된 것은 물론, 피해자는 가해자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을 배제할 수 없다.
2. 범행 수법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보도
성범죄가 일어난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보도하는 것 또한 2차 피해의 원인이 된다. 성추행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보낸 성희롱적 메시지를 대화창 이미지로 재구성해 삽입한 기사는 물론 피해자에게 수치심을 준 가해자의 행동을 선정적으로 묘사한 기사도 다수이다. 이로 인해 해당 기사를 본 피해자들은 당시 상황이 머릿속에서 재현되어 정신적 충격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지나치게 자세한 묘사는 유사 범죄를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3. 가해자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보도
‘미투(MeToo)’ 사건으로 인해 각계 정상급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성범죄자였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사건을 보도할 때, 언론들은 피해자의 피해 사실보다 가해자의 명예 실추에 더 초점을 두어 보도하는 경향이 있었다. 일례로 연기자 ‘조재현’ 씨가 미투운동에서 지목되자, “그동안 힘겹게 쌓아 올린 대중적 인지도가 한꺼번에 무너져 버렸다”며 가해자 입장에서 사건을 전달해 가해자에게 감정 이입을 하도록 유도했다. 이 기사를 읽은 여론 또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까지 사람의 인생을 바닥으로 끌어 내릴 셈이냐’, ‘마녀사냥, 인민재판 급이다’라는 댓글이 이어졌다. 가해자의 입장과 해명에만 집중하는 보도는 가해자에 대한 동정여론을 이끌고, 미투운동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피해자의 입장을 대변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피해자를 움츠러들도록 하는 것이다.
4.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
성범죄 사건을 보도할 때, 제목부터 선정적인 내용을 연상시키며 독자들의 클릭을 유도하는 기사들이 다수이다. 성폭력 범죄 사실을 알리고 이와 같은 피해가 더는 일어나지 않도록 막기는커녕, 성범죄 피해 사실을 자신의 기사 조회수를 늘리기 위한 수단으로써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피해 사실의 심각성이 선정적인 보도로 인해 묻히는 경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
5. 성추문∙몹쓸 짓 등 성폭력을 사소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헤드라인
성범죄 기사의 제목을 보면 ‘몹쓸 짓’이라는 단어를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성폭력, 성추행 등 법적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기를 꺼리는 문화가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분명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몹쓸 짓’ 등 성폭행을 돌려 말하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면 성폭력의 심각성을 희석하게 될 수도 있다.
언론으로 인한 성폭력 2차 피해의 유형과 원인에는 위와 같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언론은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를 보호하고 더 이상의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언론은 성범죄 사건을 어떻게 보도해야 할까?
언론으로 인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성범죄 보도 지침
1. 피해자의 인권 보호와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할 것
범죄 사건 보도 외에도, 언론은 취재원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제 5조(취재원의 명시와 보호)를 살펴보면, 기자는 취재원의 안전이 위태롭거나 부당하게 불이익을 받을 위험이 있는 경우 그 신원을 밝혀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범죄 사건에서 기자가 피해자의 신원을 밝힐 경우, 우선 피해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개인정보가 대중에게 알려졌다는 사실에 불안해 할 수도 있다. 또한 이로 인해 피해자는 보복 범죄로부터 자유로운 몸이 아니게 된다. 더불어 범죄 사건을 지나치게 자세하게 묘사할 경우, 피해자는 당시 상황이 생생하게 떠올라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생방송 인터뷰를 하는 경우, 피해 사실에 대한 입증 책임을 피해자가 대중을 상대로 오롯이 져야 하므로 인터뷰 후 심각한 2차 피해를 초래하기도 했다. 따라서 언론은 성범죄 사건을 보도할 때 피해자를 보호하고,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피해자의 신상을 과도하게 노출하거나 범죄 상황을 자세하게 묘사하면 안 된다. 지금 언론에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은 보도 이후 피해자가 감당하게 될 법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고려이다. 언론 보도로 인해 불필요한 2차 피해가 생겨나지 않도록 취재 및 보도 전반에서 보다 세심하고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2. 선정적 보도보다, 성폭력 예방과 해결에 집중할 것
많은 언론사들이 성범죄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이 실정이다. 하지만 성범죄를 보도하는 실질적인 목적은 더 이상 유사 범죄가 일어나지 않게 예방하고, 이를 대중에게 알려 관심을 갖게 하고 여론을 형성함으로써 성범죄 사건을 해결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사의 내용을 선정적으로 작성할 것이 아니라,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치중해야 할 것이다. 선정적인 보도는 이러한 보도의 목적을 훼손하고, 오히려 성범죄 사건을 가볍게 바라보는 데 일조할 뿐이다. 더불어 성범죄를 ‘몹쓸 짓’ 등 우회적인 단어를 사용하였을 때에도 성범죄 사건의 심각성이 희석될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성범죄 사건을 보도할 때 성폭력, 성추행 등 공식적이고 법적인 표현을 사용할 것을 제안했다. 언론 측에서 성범죄를 심각하게 다루게 되면 대중들도 성범죄의 심각성을 보다 더 쉽게 자각하여 성범죄의 예방과 해결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될 것이다.
3. 젠더 폭력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취재/보도를 할 것
젠더 폭력이란 사회적 의미의 성(性)을 의미하는 ‘젠더(gender)’와 ‘폭력’이 합쳐진 말로 성별 차이를 기반으로 발생하는 신체, 정신, 성적 폭력을 일컫는 말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젠더 폭력은 상당히 구조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큰 파장을 일으킨 ‘미투 운동’의 가해자가 대부분 각계 고위 인사이며, 더불어 남성인 것을 봤을 때 이러한 젠더 폭력의 구조를 더욱 눈여겨봐야 한다. 이러한 성범죄는 단순히 한 개인이 다른 이를 성폭행한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회적 권리가 남성에게 편중되는 경향이 있었고, 따라서 고위 관리에는 남성이 상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권리와 지위를 이용하여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의 성을 착취하는, 사회 구조적 차원에서 이러한 젠더 폭력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기자들은 성범죄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차원의 문제임을 인식하고, 이를 대중에게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4. 피해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에 기초한 취재/보도를 할 것
성범죄 사건의 보도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입장에서 쓰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대중들은 가해자의 말에 더 잘 감정 이입하고 공감한다고 한다. 이런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대표적인 이유에는 사회가 남성의 입장과 성경험을 일반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일에 대해 감정 이입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언론이 가해자의 입장을 대변한 보도를 한다면 여론은 더욱더 가해자의 입장에 치중하여 형성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언론은 가해자보다 피해자의 말을 더 들어주고, 전해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피해자의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하여 보도해야 한다. 이런 보도가 이루어지게 되면 대중들도 피해자의 아픔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성범죄 보도 지침, 과연 잘 지켜지고 있을까?
여러 보도 지침 중, 가장 객관적이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기사의 제목에 성폭력을 우회적으로 말하는 단어가 있는지 검색해 봤다. 아니나 다를까, 미투 운동 이후 성범죄 보도 지침이 내려진 지 대략 두 달이 지난 2018년 5월 29일 네이버 포털에 ‘몹쓸 짓’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을 때 뜨는 기사 제목을 보면 성폭력을 돌려 말하는 제목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인 5월 25일에 작성된 기사(가수 문문 몰카 사건)조차 이를 ‘몹쓸 짓’이라고 표현하고 있었다. 이처럼 보도 지침이 내려졌지만, 이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2018년 5월 29일 네이버 '몹쓸 짓' 검색 결과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하영은기자]
그렇다면 2019년 1월 현재의 상황은 어떨까? 마찬가지로 네이버 포털에 ‘몹쓸 짓’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았다.
▲2019년 1월 10일 네이버 '몹쓸 짓' 검색 결과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하영은기자]
위 사진을 보면 현재까지도 성범죄 사건을 다룬 기사에서 ‘몹쓸 짓’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범죄가 사회의 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보도문화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가 성범죄에 더 경각심을 가지기 위해서는 언론이 이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범죄 보도 지침을 지켜서 보도해야 한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하영은기자]
언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With You’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고, 더 큰 상처를 안기지 않으며, 성폭력 근절에 앞장서는 보도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언론인들은 성범죄 보도에 있어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생각해보고, 성범죄가 근절되는 사회를 위해 앞장서기를 바란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사회부=9기 하영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