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많은 이슈를 낳으며 시청률까지도 고공행진 하는 드라마 <SKY캐슬> 11회가 방영된 후, 한 생소한 용어가 실시간 검색어에 등장했다. 리플리 증후군이 바로 그것이다. 시청자들이 극 중 세리가 리플리 증후군에 걸렸을 것으로 추측하며 실시간 검색어에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극 중 세리는 가족들에게는 하버드 대학교에 합격했다는 거짓말을 하고 실제 하버드 대학교에 재학하는 것처럼 신분을 위조한다. 하지만 몇 년 후, 하버드 대학교 측의 고발과 벌금 청구로 세리의 엄마가 진실을 알게 된다. 자, 그렇다면 이가 리플리 증후군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리플리 증후군이란, 자신이 처해있는 현실을 부정하고, 마음속으로 꿈꾸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 믿으며 거짓말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에 해당된다. 단순히 거짓말을 많이 하고 거짓이 탄로 날까 불안해하는 보통의 거짓말쟁이가 아니라, 자신이 한 거짓말을 완전한 진실로 믿는 것이다. 리플리 병, 리플리 효과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 증후군은 어디에서 유래한 걸까?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용어는 1955년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의 주인공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리플리는 호텔 종업원으로 살아간다. 리플리의 친구인 디키는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하였고, 금전적으로도 넉넉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리플리에게 디키는 그저 부자 아버지를 둔 덕분에 무위도식하며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리플리는 본인의 개인정보를 위조하고, 다양한 거짓말을 하며 디키에게 다가간다. 하지만 계속된 거짓말로 리플리는 본인이 디키라고 착각하는 지경에 이르고, 결국 디키를 살해한 후 본인이 그 자리에 서게 된다. 살해 사실을 감추기 위해 대담한 거짓말과 행동으로 리플리의 살인은 완전범죄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디키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하예원기자]
리플리 증후군은 꽤 다양한 작품들이 다룬 하나의 소재이다. 영화 <화차>와 <광해, 왕이 된 남자> , 또 MBC의 드라마 <미스 리플리> 모두가 주인공이 리플리 증후군에 걸린 설정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또한 실제 리플리 증후군에 걸린 인물이 사회에 큰 충격을 사건도 많았다. 일명 신입생 엑스맨 사건과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 또 김정윤 씨가 미국의 명문대 두 곳에 동시 입학을 했다며 사기극을 벌인 것들이 대표적이다.
신입생 엑스맨 사건은 한 남학생이 수년간 48개 대학에 동시 재학 중인 것이 밝혀져 큰 충격을 안겨주었었다. 하지만 SBS <그것이 알고싶다> 팀의 취재 결과, 그는 교수인 아버지를 두었고 학문적으로 상당히 엄격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4년제 대학에 합격했지만 가족들과 자신의 성에 차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학을 그만두고 난 후 전국의 4년제 대학을 떠돌며 신입생 환영회에 참석하며 신입생 행세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신정아 학력위조 사건 역시 비슷하다. 2007년 7월 당시 동국대 교수였던 신정아 씨의 예일대 미술평론 박사학위 학력위조 의혹이 전방위로 불거졌고, 검찰 수사 결과 박사학위 논문도 모두 가짜였으며 예일대 학력 역시 위조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후 신정아 씨와 인연을 맺은 미술계·대학가·불교계 인사 등으로 여파가 퍼지며 문제가 심화됐다. 뿐만 아니라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 등 정계 로비 의혹까지 불거지기도 했다. 결국 신정아 씨는 학력위조와 공금 횡령 등의 혐의로 2007년 10월 구속기소 된 뒤 징역 1년 6개월 선고를 받았다.
김정윤 씨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김정윤 씨는 어렸을 때부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특출난 공부 실력을 보였고, 페이스북에는 각종 경시대회 선발자 증서와 상장 등을 올리며 하버드와 스탠포드를 비롯한 여러 대학교에 동시 입학했다는 사실 또한 알린다. 이어 김정윤 씨는 가장 충격적인 사실을 알리게 된다. 여러 학교 중에서도 하버드와 스탠포드로부터 받은 합격 통지는 단순한 동시 합격이 아니라, 하버드 대학교를 2년 다닌 후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2년만 추가적으로 공부하면 원하는 학교의 졸업장을 선택해서 받을 수 있다는 파격적인 조건의 동시 입학이었다. 이런 전례를 찾아보지 못했던 한국 언론들은 이를 대서특필하기 시작한다. 김정윤 씨는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발표한 수학 관련 논문을 관심 있게 본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가 직접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다고 이야기하며 더 큰 주목을 받게 된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네티즌들은 그녀의 각종 경시대회 상장과 대학 입학증의 이메일 주소나 필적이 정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뒤이어 하버드 대학교 홍보국장과 기타 관계자들이 잇달아 사라 킴(김정윤)이 어느 쪽에도 합격한 사실이 없으며, 두 대학교를 동시에 재학할 수 있는 프로그램 역시 없음을 밝히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거세진다. 합격을 도와주고 김정윤 씨를 매우 특별하다고 말해준 한 교수 역시도 김정윤 씨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며 결정적인 증언을 하였고, 결국 김정윤 씨의 아버지인 김정욱 씨의 공개 사과로 대국민 사기극은 막을 내리게 된다.
리플리 증후군은 성장 과정 중에 극심한 차별을 당하거나 부당한 취급을 반복적으로 받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고 한다. 또한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시달리다가 사회로부터 버려졌다는 실망감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로 나타나기도 한다. 욕구 불만족과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본인의 상습적인 거짓말이 진실이라고 믿게 되면 단순한 거짓말로 끝나지 않을 수 있고, 타인에게 심각한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입힐 위험성이 증가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이러한 욕구 불만족과 열등감을 불러일으킨 원인이 무엇인지 우리는 명확히 알아야 한다. 단순히 그들의 어리석은 주관이었을지, 혹은 학벌주의 사회가 키워낸 비뚤어진 욕망이었을지. 개개인의 성장 배경과 인성, 열정과 실력을 짓누르고 서있는 학벌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국가는 어디에 있을까. 수천만 원, 수억의 빚을 져서라도 명문대에 합격하고자 하는 국민들을 보고도 침묵하는 국가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사회부=9기 하예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