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3월 19일, 뉴욕 시 퀸즈 카운티(Queens County)의 보석 세공사 맥스 와인스틴과 그의 부인 미리암 와인스틴 사이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수년 뒤에는 아이의 동생이 태어났고, 둘은 함께 성장하며 영화인의 길을 걷는다. 형제는 1979년에 어머니의 이름을 딴 영화 제작 및 배급사인 미라맥스(Miramax)를 설립했고, ‘펄프 픽션’(1994), ‘굿 윌 헌팅’(1998), ‘시카고(2002) 등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을 제작하며 명성을 드높였다. 21세기에 들어서도 형제의 회사는 ’장고, 분노의 추격자(2012)‘, ’킹스 스피치(2011)‘ 등을 제작 또는 배급하며 성장을 거듭했다.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형제 중 형은 2012년 타임스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저예산 삼류 영화들을 배급하던 무명의 회사를 ‘아카데미상 제조기’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가진 영화계 굴지의 회사로 만들어낸 신화의 주인공. 그가 바로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성추문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하비 와인스틴이다.
[이미지 제작=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6기 최시원기자]
2017년 10월 5일, 뉴욕 타임스는 하비 와인스틴이 197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배우, 회사 직원, 모델 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성추행했다고 보도했다. 보도가 나올 당시 피해자의 수는 십여 명으로 추정되었으나, 10월 21일에는 50여 명으로 증가했고 28일에는 82명이 피해 사실을 주장했다. 피해자의 수는 계속 늘어서, 현재는 100명 이상의 피해자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의 유명 여배우인 기네스 팰트로는 영화 ‘엠마’를 촬영할 당시 와인스틴의 호텔 방으로 불려가 부적절한 제안을 받았다고 고백했고, 앤젤리나 졸리 또한 영화 ‘라스트 타임’에 출연할 당시 그의 호텔 방에서 추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의 범죄는 미국인들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의 배우 레아 세이두는 영화 배역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만난 자리에서 그에게 강제적으로 키스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수많은 이들이 용기를 내어 그의 범죄를 고발하자, 네티즌들은 와인스틴을 비판하고 고발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해시태그 #Metoo를 다는 해시태그 운동을 시작했다. 오늘날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미투 운동의 시작이다.
이렇게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지난 2018년 1월 30일 창원지방검찰청 소속 서지현 검사가 검찰 인트라넷인 E-Pros에 ‘나는 소망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성추행 사실을 고백함으로써 대한민국에서도 시작되었다. 자신이 가진 힘을 방패 삼아 타인의 성을 휘두른 권력자에 대한 대중의 고발이 시작된 것이다. SNS, 대자보, 언론 등 고발의 수단은 다양했고, 고발의 대상 역시 다양했다. 유명 시인, 촉망받는 정치인, 연기자, 대학교수. 한없이 고결할 것만 같던 이들의 본성은 한없이 추악했다. 현재까지 공개된 가해자들의 명단과 그들이 저지른 범죄의 심각성을 고려하면, 미투 운동은 타락한 사회의 암적인 부분을 도려내는 수술칼로써 기능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우려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미투 운동이 무고한 이를 공격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정범 교수 성폭행 루머 사건을 떠올려 보자. 2006년 당시 경희대학교 총여학생회는 해당 대학 국문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던 서정범 교수가 무속인에게 성폭력을 가했다고 주장하며, 보도자료 배포와 기자회견 개최 등 다양한 방법으로 서정범 교수를 공격했다. 총여학생회의 비난으로 여론이 악화하자 경희대학교는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서 교수를 직위 해제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 결과 드러난 진실은 무속인의 자작극이었다. 서정범 교수가 평소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아 평판을 실추시킬 심산으로 허위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서 교수의 무죄가 입증되자 경희대학교는 그에게 교단으로 복귀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교수는 이에 응하지 않았고 2년 뒤 자신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위 사건은 우리에게 간단한 사실 하나를 시사한다. 성폭력 피해자를 가장한 프로파간다에 대중의 이성은 쉽게 마비되며, 이를 방지하거나 피해자를 구제할 마땅한 방안이 없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여기에 더해서 미투 운동은 폭로전이라는 본질로 인하여 무고한 피해자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 타인을 의도적으로 비방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소수의 사람이 사회 전체를 돌이킬 수 없는 혼돈의 구렁텅이로 빠트릴 수 있다.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자는 그 자신이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성범죄자들은 마땅한 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동시에 마녀사냥이 이 땅 위에서 다시 재현되어서도 안 된다. 미투 운동이라는 통해 우리 사회가 보다 건전하고 청렴하게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국제부=6기 최시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