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함과 선량함",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일(현지 시간) 취임사를 마무리하며 사용한 표현 중 하나다. 그는 연설에서 '관용과 겸손함'을 통해 단결을 이뤄 본래의 위대하고 선량한 미국으로 나아갈 것을 천명했다. "우리는 미국을 다시 한번 세계의 선(good)을 선도하는 세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민주주의의 성숙에서 끝나는 말이 아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선을 언급함으로써 미국 민주주의를 도덕과 연결했다.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성숙한 민주주의의 '선량함'이었다는 것이다. '위대함'을 '선량함'과 연결하는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남북 전쟁, 대공황, 세계대전, 9/11에서 투쟁과 희생, 좌절을 통해 우리의 '더 나은 천사'는 항상 승리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숙한 민주주의의 미국을 '항상 승리를 가져오는 천사'로 칭했다. 민주주의의 성숙을 필연적 승리와 결부시킴으로써 당위를 부여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접근이 분열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로 잘 알려진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가 분열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지난해 12월 출판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성공, 승리와 같은 결과를 위대함, 선량함과 같은 능력과 도덕성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능력주의의 프레임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실제 결과에 능력이나 도덕성이 항상 그대로 반영되지는 않는다. 모든 일에는 언제나 운이 작용한다. 선천적 배경에서부터 후천적인 작은 선택 하나까지 운과 동떨어진 결과는 없다. 결과적으로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도덕적, 능력적 오만함을, 패자에게는 모멸감을 쥐여준다. 미국 사회의 극단적 분열은 지난 몇십 년간 극대화된 부의 양극화가 패자의 모멸감에 불을 붙임으로써 일어난 것이다.
능력주의가 낳은 오만한 시각은 단순히 미국의 국내적 시각에 그치지 않는다. 대외정책에 대한 시각도 그대로 영향을 받는다. '미국이 세계의 선을 선도하는 세력'이라는 시각, '미국이라는 천사는 항상 승리한다는 시각'은 능력주의의 오만함이 국제 정세 인식에 그대로 투영된 결과다. '선량함'과 '위대함'이 승리의 증표라면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실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 푸틴의 편법적 장기집권과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이 아직도 건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가 항상 정의롭지는 않고, 선량함이나 능력이 결과를 반드시 보장하지는 않는다. 도덕성과 능력, 결과를 섣불리 연결하면 오만함은 피할 수 없다. 그 아래에서 쌓여가는 패자의 분노는 덤이다. 여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필연적 결과는 갈등뿐이다.
통합을 만드는 사회적 연대와 시민의식은 평등을 통해 꽃핀다. 자유를 통해 개인의 삶과 권리를 누리면서도, 평등을 통해 같은 공동체 구성원임을 인식해야 민주주의가 결실을 맺는다. 샌델에 따르면 능력주의는 이상적인 사회의 종착점이 아니다. 기회의 평등은 불의를 교정하는 제도지, 그 자체로 정의가 될 수 없다. 기회의 평등을 넘어 조건의 평등을 실현하고,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길이다. 인식의 측면에서라면 국제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능력주의를 넘어 타국을 동등한 하나의 정치공동체로 볼 때 타협 가능한 대안이 생긴다. 동맹국이나 우방에 대해서라면 말할 것도 없고, 적성국에 대해서도 적대감과 업신여김은 구분되어야 한다. 샌델은 "상승에 실패한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 만족할 수 있도록, 그리고 스스로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여길 수 있도록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정치부=1기 대학생기자 김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