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지하철 우리나라는 '1호선~9호선', '분당선' '신분당선' '공항철도' 등 많은 지하철 노선이 다닌다.
'서울 도시철도 1호선'은 '소요산'~'인천/신창'까지 98개의 역을 가지고 있는데, 총 길이는 200km나 이르고 하루 270만명, 일 년 10억명이 이용한다고 한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11기 김도현기자]
남한의 윗단부터 충남까지 이어져 있는 1호선은 처음부터 지금 길이의 계획을 가지고 만들어진 지하철이 아니다.
서울시 구로구에서 출발해 인천까지 가는 '경인선', 지금의 KTX, 무궁화호가 다니는 '경부선'도 천안까지 1호선으로 사용 중이고, 천안에서 신창까지 장항선, 청량리역에서 소요산역까지 경원선으로 따로 분리가 되어있었다.
이러한 철도들은 1970년대에 도시와 도시를 엮는 열차였는데, 유동인구와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도시철도로 발전하고 이어서 만든 것이 지금의 1호선이다.
현재의 '경의 중앙선'이라고 불리는 '용산역~옥수역'의 노선도 90년대 초반까지 1호선으로 분류가 되어있었고, 현재 4호선으로 개편된 '금정~안산'도 사실 1호선에 속해 있던 노선이었다. '소요산'에서 내려오는 1호선을 타서 '금정역'으로 오면 무조건 내려서 안산행과 신창행으로 나누어서 둘 다 환승해서 타야 하는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현재의 4호선 과천 라인이 새로 공사가 시작되고 현재는 금정에서 인천행 열차는 4호선으로 개편되어 지금까지 이용하고 있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11기 김도현기자]
이처럼 1호선은 우리나라의 1세대 철도들을 엮어놓아서 만든 만큼 역사 깊은 도시 철도인데, 기술력이 없던 60년대 말 우리나라가 지하철을 만들 수 있게 도와주었던 나라는 일본이었다. 1965년도에 계획된 서울 도시철도 사업 규모는 매우 작았고 69년도 착공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하였으나 공사를 진행할 자금이 부족했다.
초창기 1호선은 종로선으로 불렸던 '서울역'에서 '청량리'까지 9개의 역이었고 2호선은 '서대문~ 동대문'까지 6.5km 구간 3호선은 '은평구에서 천호동' 4호선은 '우이동에서 말죽거리'까지로 계획되어 상당히 작은 사업 규모였다.
착공식은 1971년 4월 12일 서울시청에서 진행되었으나, 공사를 시작할 자금이 부족하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금 문제로 사업을 진행하지 못하자 일본 정부에게 기술력과 자금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하였고, 일본 정부는 1971년 11월 30일 '미쯔비시'와 '히타치'에서 전문가를 파견하여 우리나라 정부에게 8천만 달러를 빌려준다. 착공식을 먼저 한 후 돈을 빌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일본과 성공적으로 공사를 마친 뒤, 다음 지하철 공사는 그 당시 가장 선진 열차 시스템을 지녔던 프랑스와 기술제휴를 하여 공사를 하였다. 여러 나라들의 기술이 들어와서 공사를 하다 보니 열차들의 통행 방식이 공사한 구간마다 달랐는데, 일본이 공사했던 1호선과 4호선 '당고개~남태령'까지는 지하철이 좌측통행을 한다. 하지만 그 외에 2호선과 3호선 5호선에서 8호선까지는 모두 프랑스 시스템을 적용하여 우측통행을 한다.
또한 '청량리역'에서 '서울역'은 '도시철도 1호선'이라고 불리고 서울시가 관리를 하지만 이 외의 역은 '수도권 전철 1호선'이라고 불리고 '코레일'에서 관리를 한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11기 김도현기자]
그 규모가 크다 보니 운행 중단과 인명 사고가 상당히 자주 발생하는 노선이다. 이용객 수, 운영하는 열차 빈도수가 워낙 많을 뿐만 아니라 꽤 노후화된 차량들이 많고 지상 구간이 대부분이라 한파나 폭염에 취약하다. 하지만 수도권 전철 1호선은 '세계에서 가장 긴 도시철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고, 역사가 깊은 철도를 이어 만든 자랑스러운 서민들의 발이 되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열차이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경제부=11기 김도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