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4일, 천주교인이라면 한번씩은 가본다는 신리성지에 갔다. 신리성지는 충남 당진시 합덕읍 평야6로 135에 위치해있다. 정식명칭은 '신리 다블뤼 주교 유적지' 이며 신리성지는 조선 후기 가장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거주했던 교우촌이며 현재는 천주교 성지로 지정되어있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전서진기자]
신앙의 역사
신리에서 천주교가 전해진 시기는 '내포의 사도' 이존창이 세례를 받은 1784년보다 약간 늦은 시기였다. 신앙이 전파되자 신리에 정착해 살던 밀양 손씨 집안을 중심으로 교우촌이 형성되어 1866년 무렵 마을 사람 400여 명 전체가 신자인 교우촌이 되었다. 신리는 해로를 통해 외부와 접촉하기 쉬운 조건, 그리고 내포의 여러 교우촌들과 쉽게 연결되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조선 천주교회의 한축을 담당하였다.
순교자
기록상 신리의 첫 순교자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손경서(안드레아)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손자선 토마스 성인이 공주에서 순교한 이후 서울, 수원, 홍주, 해미, 보령 갈매못 등에서 40명이 순교하였다. 하지만 신리는 규모가 컸던 만큼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무명 순교자들도 많았는데, 인근 대전리 공동묘지에 있는 46기의 무명 순교자 묘소가 이를 말해준다.
병인박해의 영향으로 신앙의 자유가 주어진 후에도 오랫동안 신리에는 신자들이 살지 못했다. 오랜 박해를 기억하는 주민들은 신자들이 신리에 들어와 사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러나 수많은 순교자들의 땅인 신리는 신자들 사이에서 회복해야 할 장소로 기억되어야만 한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문화부=9기 전서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