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옛 선조들이 강조했던 효의 사상이 아직까지 중시되고 있는 사회이다. 또한 5월 8일이 찾아오면 우리나라 국민 중 대다수는 어버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념하고 있다는 점과는 달리 어버이날을 기념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버이날의 유래를 알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 청소년 기자단 4기 이세영 기자]
우리나라 어버이날의 유래, 알고 있나?
과거 어버이날은 본래 ‘어머니날’이었다. 1955년 8월 국무회의에서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지정하였고, 1956년 5월 8일에 제1회 어머니날 행사를 치렀다. 하지만 이날이 어머니날을 처음으로 기념한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현대와 같이 국가가 주도하는 전국 단위의 어머니날은 없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부터 소년운동 단체에서 소규모로 어머니날 행사를 진행해 왔으며, 1928년 5월 둘째 일요일에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개최하였다. ‘어머니날’은 말 그대로 소년과 소녀들이 어머니의 정성어린 보살핌과 지극한 사랑에 대해 고마움을 기리고 위로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부터 약 30년 동안 5월이 되면 기독교 단체나 여성 단체들이 먼저 나서서 어머니날 행사를 열었다.
1955년, 국가가 나서서 어머니날을 만든 이유는?
그 까닭은 어머니인 여성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동시에 다른 여성들에게도 어머니가 되어 자식을 훌륭하게 기르라고 가르치기 위해서다. 좀 더 그 당시 시대상황 속으로 깊이 들어가보면 한국전쟁으로 인해 약 10만 명의 전쟁고아, 30만 명이 넘는 전쟁미망인과 그들이 홀몸으로 돌보아야 할 100만 명이 넘는 아이들, 부상으로 일자리는 물론 행동 능력을 잃은 아버지들이 전국적으로 생겨났다. 그런 이들에 대한 국가의 복지 정책은 무의미 한 형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기르고 먹여 살리는 일은 아버지들을 대신해 여성들 즉, 어머니들이 도맡아야 했다. 어머니날 행사는 그런 어머니의 책임을 강조하는 방편이었다.
그 당시의 어버이날엔 무엇을 했을까?
그 당시의 어머니날에는 기념식, 어머니날 노래 보급, 카네이션 달기 등과 같은 행사를 진행하였다. 또한 1956년 5월 8일 창경궁에서 열린 ‘제1회 어머니날’ 행사에서는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가 참석하였다. 이날 프란체스카는 전국에서 ‘장한 어머니’로 뽑힌 어머니 37명에게 표창장과 함께 광목을 나누어주었다. 장한 어머니는 혼자서 아이들 교육에 힘쓴 어머니, 한국전쟁 때 3명 이상의 아들을 군에 보낸 어머니, 10명이 넘는 아이를 낳은 어머니, 세쌍둥이 또는 네쌍둥이를 낳고 기른 어머니, 널리 알려진 운동선수 · 음악가 · 고시 수석 합격자의 어머니, 여성 단체 간부, 고아원 원장 등의 여성들이었다. 또한 그 당시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면 하얀색, 살아 계시면 빨간색 카네이션을 달았다.
알아야할 것도 알고 있는 것도 많은 바쁘고 정신없는 삶을 사는 현대인들이지만, 바로 지금 어버이날이 코 앞에 다가온 만큼 이번 어버이날에는 우리나라 어버이날의 유래만큼은 알고 어버이날을 챙기는게 좋지 않을까?
[대한민국 청소년 기자단 문화부=4기 이세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