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즈베리의 잔향이 코끝을 휘감는","풍부하고 우아한 꽃 향의 끝 맛"
와인을 마시지 못하는 청소년이지만 다들 잡지에서 한 번씩은 이렇게 복잡한 '미사여구'를 보았을 것이다. 비록 와인은 접근성이 뛰어나다 해도, 맥주나 소주를 마시는 것처럼 소박하고 털털하게 마시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외국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한다.
빈 퓨전은 영국의 기술회사인 Cambridge Consultants에서 작년 11월에 발매한 와인 블렌딩 기계이다. 소비자가 기계의 화면을 통해 '깔끔한, 달콤한' 등의 기준을 정하면, 기계의 내부에서 각각 다른 종류의 와인이 적절히 섞여서 소비자에게 제공된다는 특징이 있다. 이 기계의 개발자들은 사람들이 와인을 지역에 따라, 혹은 포도의 종류에 따라 *샘플링하는 대신, 항상 마시던 것만 주문하는 모습을 보고 빈 퓨전을 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샘플링(sampling): (전문 용어) 시음하다. 시식하다.
개발진들은 사람들이 '마시던 것만 찾게 되는' 것에 대한 이유로 '와인 주문의 복잡성'을 들었다. 소비자들이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당도를 조절하거나 휘핑크림과 시럽의 종류 등을 고를 수 있지만, 이를 하나하나 고려해 주문하기엔 복잡하니 늘 마시던 것만 주문하게 되는 것과, '끝 맛'과 '포도의 종류' 등 요소를 고려하여 와인을 주문하는 대신 편하게 익숙한 것을 주문하는 것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개발진들은 소비자들에게 와인을 고를 때의 '가장 기본적인' 키워드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가벼운', '풍부한', '달콤한', '단맛이 없는', '자극적인'이 가장 많은 득표수를 차지했다.
키워드 설정으로 주문의 복잡성을 해소한 뒤엔 소비자들의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켜야 했다. 이에 따라 개발진은 또다시 소비자 조사를 하여 시중의 20가지의 와인을 골라내어 그중에서도 '베이스' 역할을 할 수 있는 4가지의 와인을 골라내었다. 색깔로 따지자면 섞어서 여러 가지의 다른 색을 만들어낼 수 있는 '원색'과 일맥상통한다. 이 4가지의 와인은 각각 'Pinot Noir(피노 누아)'와 칠레의 'Merlot(메를로)', 호주의 'Shiraz(시라즈)', 그리고 프랑스의 'Muscat(머스캣)'이다. 후자는 단맛을 추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이 기계의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화면엔 3개의 조절막대가 뜨는데, 첫 번 째 막대엔 '가벼운'과 '풍부한'이 양극단에 자리 잡고 있고, 두 번 째엔 '부드러운'과 '그윽한', 그리고 '화한(fiery)', 세 번 째엔 '달콤한'과 '단맛이 없는(dry)'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입맛에 따라 각 슬라이더를 조절하여 곧바로 자동으로 블렌딩 되어 나오는 와인을 즐기면 된다.
영국 경제 전문지 'The Economist'는 이 기계는 와인의 대중화에 기여를 할 것이라고 하며, 레스토랑과 바는 빈 퓨전에 입력된 정보를 분석하여 소비자들이 선호할 만한 와인을 비치해 둠으로써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이 기계의 긍정적 효과로 제시했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국제부=4기 이소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