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아침, 브뤼셀 공항과 말베이크 지하철역에서 폭탄이 터졌다. 작년 11월 파리테러이후 정확히 131일만의 일이다. 파리 테러의 용의자로 주목을 받았던 압데슬람은 브뤼셀 인근에서 숨어 지냈는데, 그는 지난 18일(현지시각) 총격전 끝에 체포되었다. 그로 인해 이번 테러는 그에 대한 보복테러란 추측이 돌고있다. 사실상 작년은 IS의 대테러로 인해 세계정세가 긴장에 처했다. 이번 기사는, 테러가 만든 세계의 우경화과정을 작년 주요 사건들로부터 찬찬히 다시 돌이켜보고자 한다.
2015년 1월 7일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테러’
작년 1월 7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선 새해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사무실에 침입한 이슬람 극단주의자 테러리스트들이 총기를 난사해, 편집장인 스테판 샤르보니에르을 포함한 직원 10명과 경찰 2명 등 총 12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에 대한 각종 비난과 풍자를 해온 주간지였다. 이에 대해 프랑스는 ‘나는 샤를리다’라는 애도 집회에서,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는 비판 집회로의 발전을 보여주며, 표현의 자유와 종교 모욕에 대한 논쟁을 일으켰다. 당시 이 사건은 프랑스의 ‘톨레랑스(관용)’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되어, 전 세계에 프랑스 시민의식을 떨쳤다.
2015년 11월 13일 파리테러사건
2015년 11월 13일 프랑스 파리 시내 여섯 곳에서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 및 대량 총격 사건으로,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는 130명 이상, 부상자는 30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은 국제 사회의 IS에 대한 비난과 각 나라의 추도로 이어졌으며, 각종 SNS에선 프랑스국기와 ‘Pray For Paris’란 구호로 프랑스에 대한 추모가 널리 퍼졌다. IS는 이후 멈추지 않고 미국에 대한 테러 의지를 밝혔다. 한편 프랑스는 IS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 IS의 최대 본거지인 시리아의 라카를 대대적으로 공습하면서 보복에 나섰다
3월 22일 브뤼셀 테러
브뤼셀 공항과 브뤼셀 도심 말베이크 지하철역에서 자살 폭탄 테러가 일어났다. 현재 대략 30명의 사망자가 확인되었으며, IS는 성명을 통해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혔다. IS는 공식적으론 자신들에 대항하는 연합국을 공격한 것이라 주장하지만, 추가 테러를 모의 중이었다던 압데슬람의 진술로 보아, 이후 계획이 들어나는 것에 대해 우려하여 급히 이번 테러를 일으킨 게 아니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테러는 폭탄 속에 못과 유리등 여러 파편들을 집어 넣은 것으로 보아 대량살상이 주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브뤼셀 연방경찰이 제공한 공항CCTV속 용의자들의 모습이다. [이미지 제공=브뤼셀 연합경찰(AP연합뉴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테러들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주시해야 하는건 테러의 숫자가 아니라 그 결과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세계는 분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S에 대항하기 위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IS 격퇴안>은 사실상 별다른 효력을 내지 못하고 있다. 또한 테러는, 경제불황으로 인했던 전 세계의 우경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한때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으로, 각국은 난민들을 받아들이는데 노력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파리테러 이후, 그리고 지금, 난민들에게 테러범이란 눈초리가 따라붙고있다. 세계가 잠잠해지고 몇 달이 지난 후, 프랑스와 독일이 난민문제 해결에 의지를 다시 나타내고 19일만에 이번 테러가 발생한 것이다. 지금 난민들과 각국 시민들의 운명은 테러라는 바람이 부는 풍전등화와 같다. 갈수록 세계는 개방을 두려워하고, 극우익 정치인과 보수단체들은 국경 폐쇄를 수차례 언급한다. 그리고, 그렇게 테러를 두려워해 교류의 문을 닫는 것 이야말로 테러범들이 원하는 것이다. 이젠 테러에 대해 본질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시간이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사회부=3기 조민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