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김단아기자]
지난 11일, 이외수 작가가 자신의 개인 SNS(트위터)에 올린 <단풍>이라는 시가 누리꾼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었다. 시의 내용은 단풍을 주제로 지은 시로, 붉게 물든 단풍을 자신을 떠난 여성에 빗대고 있다.
누리꾼들이 논란을 제기한 건 다름이아닌 시 속에 사용된 단어 중 하나인 “화냥기”라는 단어이다. 논란의 중심에 선 단어 “화냥기”는 단어 “화냥년”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화냥년”이라는 단어는 병자호란 때 오랑캐에게 끌려갔던 여인들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고향으로 돌아온 여인’이라는 뜻의 환향녀(還鄕女)라고 부르던 데서 유래했다. 당시 사회에서는 적지에서 고생한 이들을 따뜻하게 위로해주기는커녕 그들이 오랑캐들의 성(性) 노리개 노릇을 하다 왔다고 하여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을뿐더러 몸을 더럽힌 계집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이렇듯 화냥년(=환향녀) 포로로 끌려가 고생한 여성에게 멋대로, 자발적으로 몸을 팔고 온 더러운 여자라는 명칭으로 사용되었고, 현재까지 같은 맥락으로 사용되고 있다.
누리꾼들은 이외수 작가가 이 “화냥년”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화냥기”라는 단어를 문학작품의 일부분으로 사용한 점에 논란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외수 작가는 이 단풍이라는 시 속에서 화냥기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단풍을 자신에게 다가오곤 바로 사라져버리는 여성에 빗대었다. 누리꾼들은 이에 “‘화냥기’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함으로써 여성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단어다”라고 말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외수 작가는 다시 자신의 개인 SNS(트위터)에 “제 글 <단풍>에 쓰여진 <화냥기>는 비극적이면서도 처절한 단풍의 아픔까지를 표현하려는 의도였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는 둥 여성을 비하했다는 둥 하는 판단은 제 표현력의 부족에서 기안합니다. 하지만 여성을 비하할 의도나 남성 우월을 표출할 의도는 추호도 없었습니다.”라고 전해왔다. 또한, 일각에서는 “화냥기”라는 단어는 이외수 작가의 문학적인 표현일 뿐, 이 단어 자체로 문제를 제기하는 일은 작가의 문학적 표현법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감성적인 문학을 창작해야 하는 작가를 비롯한 직업들은 자신의 감성을 최대한 풍부하게 드러내기 위해 수많은 단어를 빗대어 사용한다. 하지만 시대가 흘러감에 따라, 작가의 의도와는 다를지라도, 단어 자체가 가진 뜻이 시대적 상처를 다수 포함하고 있거나 특정 계층을 비하하는 의도가 녹아있을 때에도 그러한 단어들을 단지 ‘문학적 표현’이라는 이유로 계속 사용하는 것이 과연 괜찮을지 다시금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 논란이 되었던 이외수 작가의 <단풍>은 현재 작가의 개인 SNS(트위터)에서 삭제된 상태이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사회부=9기 김단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