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의 6·25전쟁 참전 과정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대한민국에 대해 불법적으로 무력공격을 감행하자 주한 미국대사 무초는 이 사실을 미 국무부에 보고하였다. 미국을 이를 유엔에서 해결하기로 결정하였다. 미국의 요청에 의해 유엔 안보리는 한국시간 6월 26일에 개최되었고 소련을 제외한 10개국이 회의에 참석하였다. 미국 대표가 제출한 결의안은 찬성 9표, 반대 0표, 기권 1표로 가결되었다. 유엔 안보리는 결의를 통해 북한 정권에게 즉각적인 전투행위 중지, 북한군의 38도 선 이북 철수를 권고하였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5기 전보건기자]
트루먼 대통령의 참전배경
트루먼 대통령은 에치슨 국무장관으로부터 한국에서의 전쟁 상황을 보고받았다. 그는 북한의 남침을 방치하면 제3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될 뿐만 아니라 유엔의 평화정신과 존립이 위태롭게 될 것으로 판단하였다. 더불어 트루먼 대통령은 자유세계의 힘으로 공산세력을 단호하게 응징하며 나아가 유엔의 권위를 수호하겠다는 신념에 따라 한국 참전을 결정하였다.
-트루먼 대통령의 최초 조치
트루먼 대통령은 한국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국방, 외교 관련 참모들을 소집하여 대책 회의를 주재하였다. 그는 한국에 조사단 파견과 한국이 요구한 미 해군과 공군을 지원하고, 대만 해협에 미 제7함대를 파견하라고 지시하였다. 특히 "미국은 유엔의 권위 아래 행동할 것이며, 미국의 철수를 보호하기 위한 군사행동은 제한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5기 전보건기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2차 결의
북한이 유엔 안보리 제1차 결의안을 무시한 채 전쟁을 계속하자, 한국시간 6월 27일(1950년) 유엔 안보리는 다시 회의를 개최하였다. 회의에는 소련 대표를 제외한 10개국이 참여하였다. 미국이 제출한 결의안은 8시간의 마라톤 회의 끝에 찬성 7표, 반대 1표, 기권 2표로 가결되었다. 유엔 안보리는 결의를 통해 유엔 회원국에게 "대한민국이 무력 침략을 격퇴하고, 그 지역에서 국제 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하여줄 것"을 권고하였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5기 전보건기자]
유엔군사령부 설치 결의
유엔 안보리는 1950년 7월 7일 유엔 회원국의 군대를 통합 지휘하게 될 유엔군 사령부 설치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 결의안을 가결하였다. 결의안은 "유엔군 사령부의 설치 및 사령관의 임명권을 미국에 부여하고, 유엔기 사용을 승인한다."는 것이다. 이는 유엔이 국제 평화를 파괴하거나 침해하는 국가나 단체에 대해 최초로 무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군사지휘기구를 설치했다는 점에서 중요했다.
미국은 7월 10일 맥아더 원수를 유엔군 사령관에 임명하였고, 맥아더 원수는 7월 24일 도쿄에서 유엔군 사령부를 창설하였다. 모든 유엔 회원국 군대는 통합하여 군사작전을 수행하였고 국군도 작전지휘권을 유엔군 사령관에게 이양함으로써 유엔군의 일원으로 싸우게 되었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5기 전보건기자]
파병된 유엔 군의 모습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5기 전보건기자]
참전국가와 지원국가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5기 전보건기자]
6 · 25 전쟁에는 연합군이라는 이름과 함께 16개의 국가가 참전하였다. 가장 많은 병력을 지원한 미국은 1,789,000명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육·해·공·군, 해병대를 지원하였고 33,642명의 전사자, 92,134명의 부상자를 기록하였다. 영국은 영연방 군을 편성하여 지원하였고 "형제의 나라 " 터키는 대규모 여단급 부대를 지원하였으며 필리핀은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참전하였다.
그 외에 남미의 유일한 참전국 콜롬비아, 캐나다, 호주, 태국, 네덜란드, 그리스, 에티오피아, 뉴질랜드, 프랑스, 벨기에, 남아공, 룩셈부르크가 전투부대를 파병하였고 또한, 인도,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이탈리아가 의료지원부대를 파병하였으며 일본, 이스라엘, 리히텐슈타인 등 39개국(파병국 제외)이 물자 및 재정을 지원하였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5기 전보건기자]
그들의 숭고한 희생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 나라가 전쟁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양에 있는 먼 나라에 자식과 친구, 애인을 오랫동안 어쩌면 영원히 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군인들 또한 먼 타국에서의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난 지 이틀 만에 미국 참전, 나흘 만에 영국 참전, 그리고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콜롬비아 까지 총 1,938,285명의 군인들이 참전하였다. 그들은 듣도 보도 못한 나라에 목숨을 걸고 왔다, 자유를 위해, 평화를 위해, 가장 공정하고 아름다운 민주주의를 위해. 그들은 누구보다 용기 있고 용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전쟁 후에도 세계에서 가장 못 사는 나라를 위해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뛰어난 나라이자 원조를 제공하는 나라로 성장하여 우리가 받은 도움을 되돌려 주고 있다.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러나 우리는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싸운 그들을 종종 잊는다. 원조를 제공하는 모습도 매우 아름답지만 이러한 일을 하게 싸워주고 봉사해준 그들을 잊지 않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이 자리를 빌려 대한민국을 위해 희생하신 참전국, 지원국에 감사를 표합니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5기 전보건기자]
The names of UN forces soldiers killed in the Korean War inscribed on the wall liveth?
forevermore.
이곳에 새겨진 유엔군 전사자들의 이름은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정치부=5기 전보건기자]
알던 사실에 대해 더욱 자세히 알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