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이승만 정권은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초대 대통령에 한해 연임을 허용하는 내용으로 헌법을 개정하는 등 독재를 이어나갔다. 이에 국민들은 부정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선거의 결과를 무효로 할 것을 주장하며 거리로 나섰다. 2021년 4월, 올해는 이러한 4•19혁명의 민주주의 물결이 일어난 지 61년이 흐른 해이다.
시인 김수영은 1921년 서울시 종로구에서 태어났으며, 1950년 서울의대 부설 간호학교에서 영어 강사를 하다 퇴각하는 인민군에 의해 의용군으로 징집되어 북으로 끌려간다. 이후 탈출하지만, 인민군으로 의심받으며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다가 풀려난다. 포로수용소에서 김수영은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을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과 더불어 1960년 있었던 4•19혁명은 김수영 시인의 시론이 전환점을 맞이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4•19혁명을 목격하기 이전, 김수영은 우리 현대문학사의 대표적 모더니스트라 할 수 있는 박인환을 비롯한 다양한 문인들과 낙원동에 위치한 서점 마리서사를 아지트로 삼고 문학적으로 교류하였다. 이 시기 김수영은 현실과 다소 동떨어진 내용의 관념적이고 서정적인 시를 쓰며 모더니즘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4•19혁명을 목격한 이후, 김수영의 시는 더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기 시작하였다. 1968년 시인이 강의에서 언급하였듯이, ‘時여 침을 뱉어라’는 현실 참여적인 시의 지향에 대한 그의 사유를 가장 잘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억압과 암흑의 시대 속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문학적 세계를 구축한 김수영에게 시란 온몸으로 들이받으며 현실과 깊이 관련을 맺는 것이었다.
그는 시에서 다소 공격적일 정도로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면서 암울한 사회를 마주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한 고뇌, 혁명의 완성과 자유민주주의의 도래를 향한 몸부림을 녹여내고 있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박혜진 대학생기자]
또한 김수영은 시대적 우울의 희망을 자기 성찰을 통한 내면에서 찾으려 하였다. ‘이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 소시민적 자아를 발견함에 따른 자조 섞인 자기 폭로로 이어졌다. 김수영 시인에게 반복되는 일상은 혁명을 이뤄내지 못하는 무력함과 나약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현실에 대한 절망과 자신에 대한 비관으로 가득했던 시인의 삶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마감되었지만, 시대적 과제로서의 문학의 역할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통해 현실과 깊이 관련을 맺는 양심을 발견하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으며, 더불어 혁명적인 시 세계를 구축하여 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문화부=2기 대학생기자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