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신사의 나라 영국에서 뜨거운 감자가 된 소식이 하나 있다. 영국의회에서 세계최초로 ‘치료용 맞춤 아기’를 출산하는 것을 합법화한 것이다. 치료용 맞춤 아기는 일반적으로 불치병이나 희귀병에 걸린 혈연관계의 가족을 위한 치료를 목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적합한 수정란을 골라 탄생하게 된다. 종교계에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윤리성을 이유로 맞춤 아기 출산에 반대하고 있지만, 영국의회는 불치병에 걸린 아이를 그대로 죽도록 내버려 두는 것 또한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로 치료용 맞춤 아기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였다. 이처럼 치료용 맞춤 아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현재까지도 전 세계 곳곳에서 치료용 아기를 출산하기 위한 부모들의 신청이 줄을 서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 역시 ‘치료용 맞춤 아기’와 관련이 깊다. 이 책의 주인공 안나는 어릴 적부터 백혈병과 싸우고 있는 언니를 위하여 유전자 검사를 거쳐 태어나게 되고 무수히 많은 수술을 이겨낸다. 그러나 자아정체성이 형성되는 시기인 청소년기를 겪으면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궁금증을 품으며 삶을 돌이켜보게 된다. 그리고 진정한 ‘안나’를 찾기 위해 더 이상의 수술과 기증을 거부하기 위하여 부모님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데 이 책에서는 각 장 제목을 인물들의 이름으로 설정하여 다양한 관점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고 있다.
<쌍둥이별>의 일부
[이미지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박서영기자]
유전자 진단으로 태어난 안나
옛날에 어디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만약 가족 중 누군가 백혈병이나 암과 같은 질환에 걸렸을 때 어릴 적 보관해놓은 제대혈을 이용하면 치료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제대혈은 분만 후 아기의 탯줄에서 나온 탯줄혈액인데 제대혈에는 혈액 성분을 만들어내어 혈액 질환의 치료에 이용될 수 있는 조혈모세포와 뼈와 연골의 재생에 사용되거나 각종 암과 유전 질환을 치료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간엽 줄기세포가 풍부하게 들어있다. 그러나 제대혈을 보관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유명 연예인이나 부유한 사람들만 주로 보관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관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처럼 가족 중 어느 누구도 제대혈을 보관하지 못한 상태에서 특수한 질환에 앓게 되는 경우에는 그 가족원의 치료를 위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킴으로써 확률은 높지 않지만 환자와 새 생명의 제대혈이 일치하길 간절히 바라는 부모도 있다.
“나는 값싼 포도주나 보름달이나 순간의 흥분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었다.” - 안나
이 책의 주인공 안나 역시 그랬을 것이다. 만약 케이트나 다른 가족의 제대혈이 보관되어 있었다면 안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꽤 높았을 것이다. 이처럼 주인공 안나는 아주 특수한 목적으로 태어났고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안나는 어릴 적부터 언니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고 두 자매의 오빠인 제시 역시도 가족들 각자의 역할은 이미 정해져 있어 쉽게 바뀔 수 없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13살이 되자 안나는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엄마, 아빤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에 널 훨씬 더 사랑했단다.” 만약 부모가 어떤 이유로 아이를 가진다면 그때는 그 이유가 더욱 두드러진다. 그 이유가 사라지면, 나란 존재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질서를 흩뜨리지 마, 안나.” 오빠는 씁쓸하게 말한다. “우리는 각자의 대본을 숙지하고 있어. 케이트는 순교자 역을 맡고 있고 난 가망 없는 놈이야. 너는, 중재자야.”
우리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나는 언니가 건네주는 그릇들을 닦았고, 우리 둘 다 진실을 모르는 척하려 애썼다. 내 속엔 언제나 언니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내가 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자유롭기를 바라는 무서운 나도 있다는 진실을 말이다. - 안나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서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아픈 언니를 둔 아이였다. 은행에 가면 나한테는 늘 막대사탕을 하나 더 주었다. 교장 선생님들도 내 이름을 알았다. 아무도 날 대놓고 짓궂게 대한 적이 없다. 만약 내가 다른 애들과 같다면 어떤 대우를 받을지 궁금하다. 아무도 내 면전에 대고 그런 말을 할 배짱이 없는 걸 보면, 어쩌면 난 꽤 역겨운 앤지도 모르겠다. 모두들 내가 무례하거나 몰 사납거나 멍청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그렇게 된 건 상황 때문이라서 친절하게 구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도 진실한 나인지는 모르겠다. - 안나
안나와 케이트는 떼어놓으려고 해도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였다. 모든 사람들은 언제나 케이트에게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고 안나는 그런 언니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언니를 위한 검사를 받아온 안나는 어느 날 자기 자신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을 대하는 친절한 사람들을 볼 때면 자신이 아픈 언니를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의심하며 진실한 안나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안나는 늘 언니에 의해 정의되던 자신의 존재를 되찾기 위해 부모님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만, 그 복잡한 과정 속에서도 늘 소송취하를 고민한다. 내 생각엔 안나가 케이트를 위한 검사 자체에 대한 거부감도 분명 있었겠지만 그것보다 어쩌면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이러한 안나의 결정에 가장 크게 영향을 준 것은 언제나 언니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가족의 생활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사라와 브라이언이 안나를 잘 구슬리고 달랠 때면 안나는 갈대처럼 흔들렸을 것이고 이 글을 쓴 작가도 그런 안나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행복추구권’이라고 들어보았는가? 우리나라 헌법에는 행복추구권이라는 조항이 있다. 행복추구권이란 우리나라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 중 하나인데 안락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와 고통이 없는 상태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실현하는 권리로 정의된다. 우리나라에 이러한 조항이 있는 것처럼 안나가 살아가는 세상에도 비슷한 조항이나 권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안나는 이제는 언니로부터 정의되는 자신의 존재를 벗어나 진정한 자신을 찾아 행복을 추구하고 싶지 않았을까?
한 사건이 다양한 인물들의 관점에서 보여진다는 점, 참신한 줄거리와 내가 평소 쉽게 읽어나갈 수 있는 갈래인 소설이라는 점은 이 책의 흥미로운 특징이다. 이 책의 줄거리를 간결하게 요약하자면 ‘백혈병에 걸린 언니 케이트에게 골수를 제공하기 위한 치료의 목적으로 태어난 동생 안나의 자아정체성 찾기 프로젝트’라고 말하고 싶다. 13살, 청소년기의 안나는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해 수많은 갈등을 이겨내며 성장해 나간다.
어떠한 책이라도 그 책에는 그 책을 쓴 작가의 평소 생각이나 경험이 담겨있다. 이 책의 작가인 조디 피콜트 역시 삼 년 사이 수술을 열 번이나 받은 한 아이의 엄마였다. 이 책에는 케이트와 안나에 대한 사라와 브라이언의 감정이 잘 드러나 있어서 쉽게 몰입할 수 있었는데 그 이유가 여기 있음을 깨달았다.
이 책은 영화 <마이 시스터즈 키퍼(My Sister’s Keeper, 2009)>로도 재해석되었다고 하니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아쉬움을 감출 수 없는 사람들은 영화로도 한번 감상해보길 바란다. 참고로 영화와 소설의 결말은 조금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이 소설은 가족 간의 사랑을 다룰 뿐만 아니라 안나의 성장기 또한 다루고 있다고 생각되기에 성장소설로도 손색없다. 또한, 생명윤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자신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할 시기의 청소년들이나 가족 간의 진정한 사랑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IT·과학부=4기 박서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