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제공= WBC 공식 홈페이지, 저작권자에게 사용 허락을 받음]
1승 2패, 조 3위. 대한민국 WBC 대표팀이 받아 든 성적표이다. 지난 해 열린 제 1회 프리미어 12에서 영원한 숙적, 일본에 기적적인 역전승을 거두고 우승한지 얼마 안 됐고 서울에서 예선이 치러지기 때문에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모두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참혹했다.
한국은 대만, 이스라엘, 네덜란드와 함께 A조에 속해있다. 네덜란드와 이스라엘은 정식프로리그도 없는 야구 변방국이고 대만은 몇 안 되는 프로야구리그가 존재하기 때문에 대만을 제외하고는 만만한 조 편성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WBC의 특별한 룰이 적용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WBC는 부모나 조부모의 국적을 따라 출전할 수 있다. 한국으로 귀화한 주권(22, kt 위즈)도 부모의 국적을 따라 중국 국가대표로 참가하였다. 최근 은퇴한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2006년 제 1회 대회에서는 미국 대표로 참가했지만, 제 2회 대회에서는 도미니카공화국 대표로 출전하였다. 이 룰이 적용되면 네덜란드와 이스라엘 팀의 위상이 확연히 올라가게 된다. 네덜란드령 퀴라소는 인구는 작지만 야구열기가 대단하여 많은 메이저리거들을 배출해냈다. 이스라엘은 본토보다 세계 각지에 퍼진 유대인이 더 많은 만큼 수많은 미국 이민자들 중 걸출한 실력의 선수들이 많다.
네덜란드는 확실히 메이저리거도 많고 지난 2013년 대회에선 한국에게 예선 탈락이라는 수모를 안긴 기억이 있기에 가장 경계해왔고, 대만 역시 무시 못 할 전력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메이저리거 보다는 주로 마이너리거로 구성되었기에 조 최약체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보니 정반대의 양상이 나타났다. 3승 0패로 당당하게 조 1위를 차지한 이스라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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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추신수, 김현수 등의 국제대회에서 맹활약한 선수들이 시즌 준비의 이유로 빠지고, 김광현,강민호 등 핵심 전력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객관적인 전력이 약화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의지'와 '정신력'이다. 야구는 변수가 굉장히 많은 종목이다. 프로 리그 경기처럼 많은 경기수를 치르면 순위의 윤곽이 드러나지만, 꼴지 팀이 우승팀을 잡는 등 단기전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실제로 군인 야구단인 상무와 경찰청이 한국 대표팀이 패배한 네덜란드와의 연습경기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WBC 역시 변수가 많은 단기전이다. 정신력은 단기전에서 '이변'을 만들어낸다. 물론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기적'이 되겠지만.
이스라엘 대표팀의 구성원은 대부분 부모가 이스라엘 이민자인 미국인이다. 그들은 유대인의 정서와 가치관을 물려 받았지만 대부분이 이스라엘에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스라엘 대표팀은 대회 준비 기간 중 예루살렘에 다녀왔다. 그들은 전해 들은 얘기로만 듣던 또 하나의 조국을 방문하여 애국심을 고취하고 결의를 다졌다. 야구는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팀원간의 결합이 되지 않으면 좋은 성과를 낼 수 없다. 제 1회 WBC 대회에서 미국이 야구 국제대회 사상 최고의 팀으로 평가 받는 초호화 멤버를 데리고도 우승을 이뤄내지 못한 것은 단합력이 부족했어서라는 평가가 많다.
반면 한국은 어떠한가. 과거 한국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 당시엔 지금보다 더 화려한 멤버로 구성되었기는 하지만, 그들은 세계 최정상 급 선수들을 상대하는데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을 믿고, 동료들을 믿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어떠한가. 팽팽한 접전 상황에서도 덕 아웃에서 파이팅을 외치는 리더 하나가 없다. 투수는 자기 공을 던지지 못 하고, 타자는 자기 스윙을 하지 못 한다. 객원해설로 참여한 박찬호 해설위원은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스트라이크 존에 직구를 던지면 타자가 치지 못 한다, 그런데 안타 맞기가 두려워서 변화구만 던지고 그 변화구가 제구가 안 된다. 이걸 배터리(투수와 포수)가 알아야 하는데 참으로 안타깝다'고 도망가는 피칭을 하는 투수를 비판했다.
아울러 KBO리그의 문제점도 드러난다. 작년은 역사상 최다인 40명의 3할 타자를 배출했다. 그러나 이는 타자의 수준이 올라가서가 아니다, 투수의 문제이다. 네덜란드와 이스라엘과의 두 경기에서 1점 밖에 내지 못 한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한화 이글스의 김성근 감독은 '류현진과 김광현 이후로 리그를 호령하는 투수가 없었다'며 리그의 투수력, 나아가 리그 전체의 질적 저하를 우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FA시장은 역대 급 거품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약간만 좋은 성적을 거두면 실력에 비해 말도 안 되는 거액의 연봉을 받고는 한다. 물론 시대가 달라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과거 시대를 호령했던 해태 타이거즈는 돈이 없는 모기업의 재정상태로 인해 최대한 허리띠를 졸라매었고, 살아남기 위해 선수들이 무서운 정신력과 경기력을 보여주어 저승사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해태 선수들처럼 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 비해 해이해진 선수들의 마음가짐을 고칠 필요가 있다. 과연 병역 면제가 걸린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이었어도 이런 처참한 성적이 나왔을까?
KBO리그는 해마다 관중 수 신기록을 갱신하고 있고,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야구지만 이번 대회 결과로 인해 실망한 팬들이 많다. 한 네티즌은 '뛰어난 선수들을 직접 보는데 적당한 가격이라 생각하고 티켓을 샀는데 돈 낭비였다'라고 비난의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팬들은 모으기는 힘들지만 잃기는 쉽다. WBC 조기 탈락으로 실망한 팬들의 발걸음을 붙잡기 위해서는 앞으로 향상된 경기력과 승리를 향한 투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이번 WBC는 KBO와 한국야구 전체에 대한 '경고장'이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문화부=4기 조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