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년 10월 8일, 일본군의 호위를 받은 일본인들과 훈련된 군인들의 복장을 한 일본인들이 경복궁에 침입하였다. 이들은 고종과 태자를 위협한 후에 옥호루에 들어가 왕비를 칼로 찔러 죽였다. 그리고는 증거 말살을 위해 옥호루 옆의 숲 속으로 시체를 옮긴 후에 태워버렸다. 이들이 범행을 자행하는 동안 궁궐은 완전히 통제되었고, 범행이 끝난 후 범인들은 궁궐을 조용히 빠져나갔다. 바로 ‘명성황후 시해 사건’이다. 우리가 보통 을미사변이라고 부르는 명성황후 시해 사건은 1895년 10월 8일 새벽 조선 주재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 우의 현지 지휘 하에 일본군 수비대와 영사 경찰 및 왜인 낭인배 등이 경복궁을 습격하여 조선의 왕비인 명성황후를 여러 차례 칼로 찌른 뒤 옷을 벗겨 시간, 강간을 한 후 가슴을 도려낸 입에 담기도 힘든 치욕스러운 짓을 조선의 국모에게 행했다. 한 나라의 국모에게 이런 치욕스러운 짓을 행한 것은 세계사 어느 부분을 보아도 찾아볼 수 없는 사건이다.
이 사건은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하고 일본 국민들 모두가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 사건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해 일본에게서 사과를 받아야 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 있다. 우리는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이가현 기자]
이 사건을 알리기 위해 소설을 쓴 작가가 있다. 바로 소설 '고구려'를 쓴 역사소설의 대가 '김진명'작가이다. 김진명 작가의 '황태자비 납치 사건'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상기시키고자 했다. 황태자비 납치 사건에서는 계속해서 '한성공사관 제435호 전문'이라고 명명되는 문서가 등장한다. 이것은 일본 의회 도서관 헌정 자료실 이토 백작 문고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이시즈카 에조의 보고서'라는 제법 두툼한 문서를 이야기한다. 이것은 을미사변 당시 상황을 지켜봤던 이시즈카?에조가 일본 정부 법제국에 보낸 보고서로 소설이 발표된 후 김진명 작가의 끈질긴 추적에 의해 그 실체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이가현 기자]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이가현 기자]
이 문서는 '미우라 공사에게는 배신의 그치지만...'이라는 문구로 시작되는데 명성황후 살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다. 김진명 작가는 서문에서 '보통의 일본인들은 이러한 이국적 사실을 알기만 하면 반성하고 사과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문제는 일본 정부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철저히 덮어온 탓에 국민들이 과거사를 전혀 알지 못한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김진명 작가는 이 소설을 다시 쓴 것이다. 이 책은 출판사가 번역까지 다 마친 상태였지만 일본에 출판을 하지 못 했다. 김진명 작가는 우리 독자들과 교감하고 다음으로 중국, 미국, 세계의 독자들에게 이 사건을 알리고 마지막에는 꼭 일본에 출판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 책은 상상도 못했던 이야기이고 상상도 못했던 진실이다. 진실과 소설의 경계를 허무는 치밀한 구성과 날카로운 메시지의 책으로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은 법한 소설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고 역사를 보는 견문을 넓혔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국제부=4기 이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