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악한 행동에 분노한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악인이 있고, 그들에 의해 고통받는 피해자 또한 다수 존재한다. 그런데도 영화, 드라마 등의 작품 안에 악역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은 악한 행동을 저지른 인물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는지, 그리고 과거의 자신이 했던 행동을 진정 뉘우치는지 등을 보여주는 과정이 시청자에게 교훈을 남기기 때문이다. 단, 이는 작품의 연출을 맡은 이가 어떤 시선에서 악한 인물을 조명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전달될 수 있다.
최근 첫 방송을 한 JTBC 드라마 <시지프스 : the myth>(극본 이제인 전찬호, 연출 진혁)의 대사는 많은 논쟁을 야기했다. 등장인물 설명에 따르면 조승우는 극 중 강남의 고급 펜트하우스를 소유한 재벌인 '한태술' 역을 맡았다. 문제는 이 캐릭터의 성격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대사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극 중에서 한태술을 압박하기 위해 황현승은 한태술의 여성 편력을 약점 삼아 다음의 대사를 던진다.
"여성 편력이 꽤 있으십니다. 요즘같이 세상이 하 수상할 때는 그저 몸조심하는 게 최곤데, 안 그렇습니까? 내일 미투 기사 나갈 겁니다. 회사 주식 한 10% 빠지겠네요."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박혜진 대학생기자]
‘미투(#Metoo) 캠페인’은 SNS에 자신의 성범죄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캠페인이다. 대한민국에서는 2018년 1월 법조계를 시작으로 문단계까지 이어져 우리 사회에서 성범죄가 얼마나 만연해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끔 한 사건이었으며, 현재까지도 피해자들은 조롱에도 피해를 입증하기 위해 길고 긴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만약 성범죄 피해자가 쉽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인정받고, 가해자는 가해 행동에 대한 응당한 처벌을 받는 사회였다면 드라마 <시지프스>의 대사에 대한 반응이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현실은 다르다. 대중은 가해자, 혹은 가해자의 가족들에게는 관대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삭혀 곪아있던 상처를 어렵게 세상에 꺼낸 피해자에게는 ‘꽃뱀’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며 한없이 검열한다. 피해자는 완전무결해야만 한다. 성폭력 문제와 같이 명백한 가해와 피해 관계가 존재하는 사건에서, 그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대사는 시청자를 불쾌하게 할 뿐이었다. ‘미투 운동’이 남성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안일한 인식에서 피해자의 처절함에 대한 공감은 전혀 읽어낼 수 없었다. 황현승이라는 인물의 악함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적절한 방식을 찾는 성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문화부=2기 대학생기자 박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