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3일 전주에서 일어났던 만세운동을 약 99년 뒤인 지난 10일 전주신흥고등학교와 전주기전여고 학생들 그리고 여러 단체까지 합쳐서 약 1000명이 모여 만세운동을 재현했다.
이 학생들은 신흥고 운동장에 모여 신흥고등학교 조재승 교장선생님과 광복회 관계자분들의 인사말과 각 학교의 학생회장이 독립선언서를 읽고 마지막으로 만세 삼창 후 경찰의 보호에 따라 객사를 지나 한옥마을까지 행진을 하였다. 행진을 하는 도중 곳곳에서 목소리가 큰 남학생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면 주변 학생들이 “만세!”를 외치는 모습이 보이곤 했다.
전동성당을 끝으로 행진을 마친 학생들은 만세운동 공연을 보았다. ‘독도는 우리 땅’ 노래에 맞춰 남녀 학생들이 춤을 추고 중국 변검, 훌라후프 묘기, 비트박스, 마지막으로 만세운동에 대한 연극으로 전주 3.13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마쳤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6기 이정찬기자]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6기 이정찬기자]
그렇다면 전주 3.13 만세운동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박태련 , 김신극 등 전주 지도자들은 군산에서 4일과 5일 독립만세 시위가 감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태극기를 인쇄하고 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방에서 시위가 계속되자 일본 경찰은 신흥학교와 기전학교를 비롯한 전주시내 학교에 강제 방학 조치를 했다. 이에 최종삼 등 신흥학교 학생 5명은 밤을 이용해 신흥학교 지하실에서 태극기를 만들고 1919년 3월 13일 서문교회의 김인전 목사를 중심으로 장터에서는 채소 가마니로 위장해 태극기를 은밀히 나누어주었고 낮 12시 20분에 신흥학교와 기전학교 학생 및 천도교도 등은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을 불렀다. 이날 많은 사람들이 일본 경찰에 붙잡혔고 많은 학생들이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이후 고형진, 남궁현 등 신흥학교 학생들은 시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실형 1년을 받았다. 그중 신흥학교 학생 3명은 일제의 고문에 옥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학생들은 3.13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통해 나라 잃은 우리 국민들의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이러한 국민들의 노력으로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을 수 있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문화부=6기 이정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