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6기 박환희 기자]
지난달 27일 개봉한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은 개봉 4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하였다. 영화의 주된 내용은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시작하여 이한열 열사의 사망까지 6월 민주항쟁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영화를 보기 전 대부분의 사람들은 6월 민주항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마도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투쟁'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면 다행이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교과서로만 접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모르는 그 진실이 무엇일까? 그들은 도대체 왜 거리로 뛰쳐나왔을까?
먼저 6월 민주 항쟁을 간단히 정의하자면 1970~80년대 발생한 군사독재에 대항하고자 전국적인 규모로 펼쳐진 민주화 항쟁이라 할 수 있다. 배경으로는 당시 정권인 전두환 정권은 임기 종료를 채 1년도 남기지 않은 상태로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생이자 친구인 노태우(전 대통령)에게 세습하고자 하였다. 그러던 와중 1985년 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신민당이 승리하면서 국민들이 대통령 직선제에 대한 요구와 군부 정권 철폐를 기대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부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묵과했다.
국민의 기대가 불만과 분노로 바뀌게 되던 중 1987년 1월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종철 군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수사를 받던 중 물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생긴다. 이 사건에 대해 정부에서는 감추기 급급했으나 언론 등을 통해 시민들이 알게 되자 당시 수사 기관인 경찰에서는 이러한 말 한마디를 남긴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이 망언은 30년이 넘는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이 사건 외에도 6월 9일,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규탄대회'에 참여한 이한열 군(당시 경영학과 2학년 재학)이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지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후 약 한 달여간 혼수상태를 유지하다 결국 7월 5일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들의 사건이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하여 결국, 6월 10일부터 분노한 민중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게 된다. 이는 전국적인 규모의 시위가 이어졌으며 그 결과 6월 29일 당시 대통령 후보인 노태우의 수습안 발표로 인해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현대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따라잡는 것조차도 벅찬 지금, 과거를 되돌아볼 시간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금과 같은 삶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30여 년 전에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1987'을 반드시 관람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오늘 하루만이라도 그들의 노력을 기억해본 것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사회부=6기 박환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