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57년 전, 1960년 4월 19일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이뤄낸 혁명이 있다. 바로 4·19혁명이다.
[이미지 제공=한국민족문화대백과]
그 해의 3월 15일의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의 이승만은 총 투표수에서 당선에 필요한 3분의 1보다 두 배 이상 많은 표를 얻었다. 이는 명백한 부정선거이다. 이승만의 부정 선거는 반정부시위로 하여금 전국에 걸쳐 일어나게 하였다. 그리고 4월 초, 마산 앞바다에서 왼쪽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발견된다. 시위에 참가하였다가 변사체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를 본 시민들과 학생들은 매우 분노했다.
그리고 4월 19일 약 3만 명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경찰이 학생들에게 발포하기 시작했으므로 학생들의 시위는 폭동으로 변하였다. 전국적으로 수천 명의 학생들이 참가한 엄청난 시위였다. 이후 일반 시민들도 시위에 가담하기 시작하였고 4월 25일, 300여 명의 대학교수들이 이승만의 사임을 요구하는 제자들을 지지하면서 서울 시내를 행진하고 나섰다. 결국 4월 26일, 이승만은 사임을 발표하고 만다. 학생들의 움직임이 혁명을 일궈낸 것이다.
무려 57년 전에 있었던 이 사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 자신들의 학우가, 또 가족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가는 것을 보면서도 끝까지 이뤄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 날은 학생들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나이가 어리다고 물러서는 것이 아닌 직접적으로 참여했을 때 학생들도 나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날의 우리는 1960년의 4월 19일을 기억해야 한다. 그 뜻깊은 날의 의미를 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문화부=4기 윤하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