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윤동주(1917~1945)의 시인 '서시'를 읽어 봤을 것이다. 그 외에도 '별 헤는 밤', '쉽게 씌여진 시', '자화상' 등 여러 작품을 남겼다. 1945년 2월 16일 만 27년 1개월 17일의 짧고 굵은 삶을 살고 일본의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사망하기 전까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괴로워 하였다. 오늘날에는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2위에 오르는 등 그의 작품은 70년이 넘는 현재까지도 한국과 중국, 일본 등에서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또, 그의 삶은 지난해 2월 개봉한 영화 '동주' 등 여러 작품을 통해 많이 알려져 있다. 올해에는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다양한 행사들이 이뤄진다고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윤동주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고칠 점과 왜곡된 사실이 있다.
(윤동주의 사진)
[이미지 출처=Basic 고교생을 위한 문학 용어사전]
지난해 서울 은평구에서는 "윤동주가 다녔던 숭실학교의 후신인 숭실중학교 인근에 '윤동주 도서관'을 짓겠다."라고 하며 공사를 시작하였다. 윤동주가 숭실학교에 다녔을 때는 평양에 있었지만 1975년에 은평구로 옮겨왔다. 윤동주의 유족은 은평구청장을 만나 "취지는 좋지만 억지로 윤동주와의 연고를 만드는 건 옳지 못하다."라며 "도서관의 이름에서 '윤동주'를 빼달라."고 요구하였다.
중국에서는 윤동주를 조선족으로 표기해 논란이 되고 있다. 윤동주는 당시 북간도라 불리는 중국 용정에서 자랐는데 이는 노골적으로 역사 왜곡을 진행되고 있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중국 용정의 윤동주 생가 앞 표지석에는 '중국 조선족 애국 시민 생가'라고 적혀져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통해 일제강점기(1910~1945)에 만주에서 있었던 모든 역사나 사건을 중국사의 한 부분으로 편입시키려고 하고 있다. 또한,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에서도 윤동주는 중국 국적인 조선족 시인으로 소개되어 있다. 지난해부터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가 여러 차례 시정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후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사소한 일 하나하나가 그의 업적을 희석시킬 수 있다. 조국을 위해 독립운동을 한 인물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 자체는 나쁘지는 않다. 하지만 역사를 왜곡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기 위해서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사회부=4기 박환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