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은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와 장안구에 걸쳐있는 길이 5.5 킬로미터의 성곽이다. 1964년 사적 3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수원화성은 조선시대 최고의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던 정조 때에 건설된 성곽이다. 당시 최고의 실학자 중 한명이었던 정약용이 고안한 거중기 덕분에 더 빠르고 더 체계적이며 더 과학적으로 건설 할 수있었다. 현대 건축학자들도 이런 과학적인 화성을 보고 놀랄 정도라고한다. 그럼,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성인 수원화성에는 어떤 과학기술이 숨겨져 있을까?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장민경기자]
화성의 성벽은 첨단 건축 기술로 설계되었다. 성벽의 건축에서 가장 큰 특징은 성벽과 여장(성벽을 만든 이후 그 위에 쌓은 성의 담) 사이에 검은색 벽돌이 끼어 있다는 점이다.이 벽돌을 일컬어 미석(楣石)이라고 부른다.
수원화성 성벽과 여장 사이에 미석을 끼워놓았는데,그 이유는 무엇일까? 겨울철 성벽의 틈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얼어버리면 부피가 팽창해 성벽의 형태가 변하면서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그렇지만, 미석을 끼워놓으면 비나 눈이 와도 성벽으로 물이 스며들지 않고 아래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화성에서 건축 기술 공법상 또 하나의 특징은 건축 자재로 처음으로 벽돌을 도입하였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성벽을 쌓았던 화강암 덩어리와는 달리 검은 빛 벽돌은 성벽 건축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화강암의 강도는 매우 강하지만 돌과 돌의 이음새가 딱 들어맞지 않아 화포 공격 등 외부의 강한 충격을 받으면 쉽게 깨지거나 빠질 수 있지만, 벽돌은 일반 돌 덩어리와 달리 작고 규칙적이기 때문에 화성을 견고하게 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화성의 성벽에는 이런 특징 말고도 또다른 독특한 특징들이 있다. 바로 성벽의 높이가 다른 성들에 비해 약 4m 정도 다른 성벽들보다 낮은데, 이는 당시의 전쟁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정조가 화성 천도를 구상할 당시, 전쟁의 양상이 병사들이 성을 타고 넘어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 화포로 성벽을 쏴 무너뜨려 점령하는 형태였다. 따라서 성벽을 높게 쌓아 대포의 표적이 되기보다 다른 성벽들보다 좀 낮게 건축하여 설령 대포를 맞더라도 견딜 수 있도록 높이를 낮춘 것이다.
수원 화성 건축하면 가장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거중기다. 거중기는 화성을 축성할 때, 무거운 돌을 들기 위해 개발한 현대의 기중기이다. 거중기의 도움으로 10년이상 걸릴 건축기간을 2년 9개월로 단축시켰다고 한다.
화성 건축에서 또 하나의 과학적 발명품으로는 녹로가 있다. 녹로는 거중기와 마찬가지로 화성 건축 시 무거운 것들을 들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그 원리는 깃발을 올릴 때 사용하는 방법을 이용하였다.
당시 둥글게 제작해야 했던 봉돈의 다섯 굴뚝, 원통형 구조물로 제작해야 했던 서북공심돈과 동북공심돈, 그리고, 화서문의 반달형 옹성과, 불규칙한 성벽에서 곡선 부분을 아름답고 견고하게 제작하는데 있어서 벽돌의 역할에 대해 현대 건축학자들도 놀랄만하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IT과학부=4기 장민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