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하은지기자]
'R=VD! 간절하게 원하면 이룰 수 있어요.' '피나는 노력이 있다면 불가능한 것은 없어요.'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 보면 순수한 노력이 가져다주는 성공에 대해 노래하는 자기 계발서들을 찾을 수 있다. 그런 책들은 '개천에서 용 난' 부류의 사람들을 예시로 들며 노력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 신화에서 주목해야 하는 건 그들의 순수한 노력과 열정뿐일
얼마 전, 18등으로 사법 시험을 통과한 장권수씨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오랜 시간 학생 선수 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시작한 공부로 그 어렵다는 사법 시험을 통과했다는 그의 이야기는 충분히 성공 신화로 거론될 만하다. 하지만 이 사례에서 살펴봐야 하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노력이 아니다.
우선 사법시험의 존치와 관련해 그의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다. 사연 속 주인공은 인생의 대부분을 공부와 무관한 삶을 살다가 뒤늦게 공부의 길을 걷게 되었고, 사법 시험에 간절히 매달린 결과 결국 법조인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사법시험이 완전히 폐지되었다면 이 사람이 인생 역전을 시도해볼 수 있었을까 일단 법조인의 길은 완전히 막혔을 것이다. 사법시험은 일종의 사회적 신분을 상승시켜주는 사다리의 역할이다.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사법시험도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더 좋은 강사와 교재를 활용함으로써 합격 확률을 높일 수는 있다. 하지만 로스쿨 시스템에서 돈이 없는 자는 출발점에도 설 수 없다. 당장 로스쿨을 다니는 데에 엄청난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우리나라가 추진 중인 사법시험 완전 폐지는 한계를 갖는다. 사법시험 완전 폐지는 그나마 출발선이 공평한 방법 하나를 없애버림으로써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또 체육 입시의 문제점들과 관련해 살펴볼 수 있다. 이 사연의 주인공은 10년 동안 야구 선수 하나만을 바라보며 달려왔지만, 그것이 불발된 순간 다른 선택권이 거의 없었다. 또 선수 생활 동안에는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장권수 씨의 다른 인터뷰를 살펴보면 야구 특기자는 수능을 모두 한 번호로 찍어도 대학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자연스레 체육 특기자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공부를 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동시에 이는 뒤집으면 운동 말고 할 줄 아는 게 전혀 없다는 말도 된다. 하지만 운동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 모두가 끝까지 그 길을 걷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학생들에게 남겨진 선택권은 거의 없다. 그와 함께 운동을 했다가 그만두게 된 친구들 중에는 조폭이 된 경우들도 있다고 한다. 중간에 운동을 그만두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전공의 길을 걷게 된 사람들에게도 운동밖에 할 줄 모른다는 점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언제까지고 현역 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소년 선수들에게 운동 외의 길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제2의, 3의 선택권들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그들을 학교 교육에서 완전히 배제한 채 트레이닝만 시키는 엘리트 체육을 바꿔야 한다. 애초에 엘리트 체육 시스템에서 선수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한 종목에 매진하게 되는데, 그 종목이 정확히 내 적성인지 알기 어렵고, 어릴 때부터 그 종목에서의 성공을 위해 메달 따기에 연연하며 학생의 스트레스는 커지게 된다. 엘리트 체육이 아닌 생활 체육 방식으로 학교 활동 안에서 다양한 체육 종목을 접하게 하면서 재능이 있는지를 찾아가고, 재능이 있을 경우에는 후에 좀 더 신경을 쓰는 방향으로 체육 입시를 바꾼다면 학생 선수들은 체육 말고도 다른 선택권들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진로를 확정해버리고 그 길이 아니면 갈 길을 없게 하는 건 체육 계열 학생들에게 너무 가혹한 사회이다. 이 시스템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극소수만을 위한 시스템이다.
앞으로 이 사람은 수많은 자기 계발서에서 거론되면서 꿈을 갖는 것의 소중함, 끊임없는 노력의 가치, 그리고 ‘하면 된다’를 뒷받침하는 사례로 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인기를 끄는 책들은 이 사람의 인생 뒤에 숨어 있는 사회 구조적 문제들은 살펴보지 않고 이 성공 사례를 예쁘게 포장해버린다. 우리는 단순히 이 사람의 인생을 동경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이 결과를 얻기까지의 길을 살펴봐야 한다. 그는 엘리트 체육 시스템의 피해자였고, 사법시험을 통과하는 그날까지 불확실한 미래를 바라보는 불안한 삶을 이어왔다. 하지만 이런 성공 신화가 거론될 때에는 ‘노력하니 되었다’로 포장되어 버린다. 개인의 끈기와 의지는 물론 칭송받아 마땅하지만, 포장된 성공 신화에서는 그가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지에 대한 고민은 이뤄지지 않는다. 이는 수많은 인기 자기 계발서들의 흔한 레퍼토리다. 개인의 성공 사례는 단순 예찬 대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다. 그만큼 눈부신 성공사례란 것은 동시에 이전까지의 삶이 힘들었음을 함의한다.
개인의 성공신화를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문화가 이젠 개인의 삶을 그렇게 만든 사회를 살펴볼 수 있는 문화로 나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