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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과 여진의 국경지대이며 1430년대에 세종대왕의 4군 6진으로 우리의 영토가 된 섬 하지만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러시아로 넘어갔으며 오늘날까지 귀속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미수복 영토. 바로 녹둔도이다. 두만강 하류에 위치한 녹둔도는 전초적 기지이자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을 처분을 받은 이유 또한 녹둔도 전투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청나라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체결한 베이징조약과 녹둔도는 무슨 관련이 있었던 것일까? 1860 조약을 체결할 당시 청나라는 영국에게 홍콩을, 러시아에는 연해주를 넘겨주었다. 연해주를 넘겨주는 과정에서 청나라 관리의 실수로 녹둔도는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다. 후에 이 사실을 안 대한제국의 고종은 베이징 조약으로 상실한 녹둔도의 반환을 여러 차례 청과 러시아에 요구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그 후 100년이란 시간이 흐른 1990년 대한민국은 러시아에 섬의 반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노력은 북한이 러시아와 국경협정과 국경설정 의정서를 맺게 되며 실패하게 된다. 물론 협상 과정 중 북한은 녹둔도의 문제를 제기했다고는 알려졌으나 결과는 변함이 없었다. 이후 러시아는 녹둔도의 남쪽에 제방을 쌓아 섬의 실효적 지배를 유지하고 있다.
녹둔도는 고려사 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대동여지도 등 각종 지리지와 고지도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1884년경에는 녹둔도에 113가구, 822명의 조선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주민 중 다른 나라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는 자료가 있을 만큼이나 우리 민족의 정서와 한이 담긴 곳이다. 비록 지금 당장은 우리의 녹둔도를 되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녹둔도는 간도와 더불어 미래의 통일 한국이 되찾아야 하는 영토임을 잊어서는 안 되며 반환을 위해 노력했던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나가야 한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국제부=4기 유한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