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서양인들이 조선을 접할 수 있는 책은 하멜 표류기가 거의 유일했다. 하멜 표류기는 하멜이 13년간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동인도회사에 제출한 보고서이다. 서구 중심적이고 조선을 폄하하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는 비판도 존재하나 17세기 조선의 생활사를 자세하게 기록한 최초의 서양 도서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김용준 기자]
하멜은 1652년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중 제주도 부근에서 폭풍을 만나 표류하게 된다. 정부에서 보낸 군대에 의해 압송되어 한 달간 한양으로의 긴 여정을 하는 중 조선에 큰 관심을 갖게 된다. 당시 북벌을 계획하던 효종이 하멜을 기술자로 이용하려 훈련도감에 소속시키지만 일반 선원이었던 그는 딱히 정부에서 원하는 기술들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하멜 일행은 효종의 친위대로 이용된다. 신기한 외모에 우람한 체격이 효종의 권위를 높여준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하멜 일행 중 두 명이 탈출을 시도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정부에서 이들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사형 직전까지 갔던 일행은 효종의 극심한 변호로 전라병영 유배로 감형된다. 1666년 즈음 일행은 전라 좌수사가 요구한 노역을 회피하고 돈을 모아 동네 어부의 어선을 구매한다. 북벌에 대한 희망도 사라지고 하멜의 기술력 또한 별 볼 일 없으니 정부에서 이들의 탈출을 방조했다는 설도 있다. 일본에서 1년간의 체류 후 네덜란드로 송환된 하멜이 펴낸 책이 하멜 표류기와 조선 왕국기이다. 하멜 표류기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동인도회사에서는 하멜에 13년 치 봉급을 모두 지급하고 조선과 직접 교역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일본의 반대로 무산된다. 한편 일본은 하멜의 일본 체류 당시 조선에 대한 정보를 캐물을 목적으로 억류시켰다고 한다. 하멜 표류기에 있는 몇 가지 주요 내용을 보면서 조선의 당시 상황을 파악해보자.
-이 나라는 인구가 많지만 생산력이 풍부해 삼남지방의 곡물과 면화로 자급자족한다.
-조선은 산맥을 사이에 두고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 양반과 노비는 세금을 내는 것 외에는 의무가 없으며 국민의 절반은 노비다.
- 왕에게 항거하거나 왕위를 찬탈하려는 사람은 멸족을 당했다.
- 조선인들은 단지 12개의 국가만 알고 있으며 우리를 남만국으로 불렀다.
- 승려들은 거의 존경을 받지 못하며 그 나라의 노비와 다를 바 없었다.
- 일반인들은 장님이나 무당을 의사로 삼으며 그들의 충고를 따랐다.
- 양반과 평민들은 자식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다.
- 남자는 그의 부인이 몇 명의 아이를 낳았어도 내쫓을 수 있고 다른 여자를 부인으로 맞아들일 수 있었다.
- 부모가 여든 살 정도 되면, 맏아들이 재산을 물려받아 부모의 여생을 돌봤다.
- 조선인들은 너무나 착하여 남의 말을 쉽게 듣는 대신에 훔치고, 거짓말하는 등의 성격이 있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IT과학부=4기 김용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