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 26일, 이날은 일본인으로 가장한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 잠입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이다. 그 후 안중근 의사는 뤼순감옥에서 5개월 동안 자서전 ‘안응칠 역사’를 집필했다. 그의 자서전 ‘안응칠 역사’에는 어떠한 내용이 담겨 있을까. 안중근 의사는 동포에게 독립운동을 권하며 “만일 백성이 없다면 나라가 어디 있을 것인가. 더구나 나라란 몇몇 대관들의 나라가 아니라 당당한 2천만 민족의 나라인데, 만일 국민이 국민 된 의무를 행하지 않고서 어찌 민권과 자유를 얻을 수 있단 말이오.”라는 말을 남겼다. 이렇듯 자서전의 한 부분만 보아도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올해 2019년은 3.1절 100주년이 되는 동시에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9주기가 되는 해이다. 안중근 의사의 순국 109주기를 맞이해서 조국의 독립운동을 이바지한 안중근 의사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다시 되새겨보는 것은 어떨까.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정하현기자]
전시실을 통해 알 수 있는 안중근 의사의 주요 업적들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안중근 의사는 아버지 안태훈의 영향 아래 학문을 배우는 한편, 사냥과 활쏘기, 말타기 등을 배워나가며 어린 나이서부터 독립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06년 삼흥학교와 돈의학교를 운영하는 등 교육운동에 힘을 썼고, 그 이후인 1907년에는 국채를 국민들의 모금으로 갚기 위하여 전개된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하여 관서 지부 설치를 주도하였다. 이어 안중근 의사는 11명의 동지들과 ‘조국독립의 회복과 동양평화의 유지’를 위해 헌신할 것을 목표로 동의단지회를 결성하여 왼손 약지의 첫 관절을 잘라 단지동맹을 맺었다. 이것은 1909년 2월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하얼빈 의거 이후 안중근 의사는 일본 법정에서 법정투쟁을 벌였으나 일본 법정은 1910년 2월 14일 사형을 선고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31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하였다.
안중근 의사의 독립운동 과정에서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안중근의사기념관. 안중근 의사 순국 109주기를 맞이해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3·1절 100주년부터 안중근 의사 순국 109주기까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각종 공연, 영화들이 개봉했다. 이처럼 뜻깊은 해인 만큼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독립운동에 헌신한 여러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그 정신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길 바란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사회부=9기 정하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