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최은희기자]
윤동주, 유년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여러 서적에서 접하게 되어 굉장히 익숙한 이름.
그의 발자취를 따라 밟아보니 그는 시인,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저항시인’이었다.
3.1절을 맞이한 오늘, 하늘과 바람과 별이 함께하는 '윤동주 문학관'에서 저항시인 윤동주를 만나보자.
제1전시실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일생을 시간적 순서에 따라 살펴볼 수 있었는데 명동촌에서의 출생, 연희전문학교 입학, 후쿠오카교도소에서 삶의 마감까지 9개의 전시대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전시대 옆에 전시된 우물이었다.
그 우물은 윤동주 시인의 생가에 있던 우물을 실제로 옮겨와 전시한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그 우물에 비친 당신의 얼굴을 보며 ‘참회록’이라는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미지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최은희기자]
제2전시실 열린 우물은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뚫려있는 곳이라고는 하늘이 보이는 천장뿐이었다.
일제강점기의 답답한 현실과 사방이 막힌 교도소에서 유일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하늘을 형상화한 이 공간에서 시인의 시를 다시 마음에 새겨보게 된다.
죽는 날까지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했던,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고자 꿈꿨던, 그리고 그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다짐했던 그의 시를.
제3전시실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삶에 대한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윤동주 시인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이었다.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마주하면서 일본식 이름으로 바꾸게 되었던 그.
그는 괴로워했고 그 괴로움과 부끄러움을 시로 써내려갔다.
윤동주 시인이 저항 시인이라고 일컬어질 수 있는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아픔과 괴로움을 그의 시에 담았고, 펜으로밖에 저항할 수 없었다는 사실조차도 부끄러워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미지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최은희기자]
또 한 번의 어둠 속을 걷고 있는 대한민국
“지금의 세상은 온통 환자투성이”
그 시대의 아픔을 담은 시가 오늘날 현실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시가 어두운 일제강점기의 ‘등불’이 되었듯, 우리의 ‘촛불’이 어두운 탄핵국면 속 진실을 밝게 비추길 기대해본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정치부=4기 최은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