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노국(러시아)과의 관계'라는 사설이 삭제된 조선일보 1면>
일제 강점기 당시, 우리나라의 독립 운동가들 이외에도 독립을 위해 열심히 애썼던 단체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조선일보'이다. 조선일보는 현재 우리나라 신문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20년 3월 5일에 창간되었다. 조선일보는 항일 보도를 계속하여 일제 강점기를 통틀어 471건의 기사를 압수당했다. 이는 식민지 시대 신문 중 가장 많은 압수 건수를 기록하였고, 정간 처분은 4차례 당했다. 문제 기사가 삭제된 지면마다 연판을 깎은 흔적이 그대로 남아 신문이 배달되었다. 탄압의 흔적은 현재 역사의 자취로 남아있게 되었다. 글자의 흔적만 남은 모양이 벽돌 같다고 하여 이러한 신문을 '벽돌신문'이라 한다.
조선 일보는 창간된 지 1개월만에 영친왕과 일본 왕족인 마사코와의 강제 결혼을 반대하는 기사를 써서 압수를 당했다. 그리고 5개월 후 8월에는 방한한 미국 의원단들을 환영하는 조선인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일본인들을 비판하는 논설 '自然의 化'를 발표하여 1주간 정간당하고 만다.
조선일보는 일본제국주의의 부당함을 비판하고 친일모리배들을 공격하는 항일 논설들을 끊임없이 작성했다. 특히 사이토 총독의 잘못된 정치를 비판하여 '사이토 씨에게 사직을 권고함'이라는 논설을 쓰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항일 기사뿐 아니라 민족의 독립운동 또한 크게 보도함으로써 식민지 시대를 살아가던 동포들에게 우리 민족이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님을 끊임없이 일깨워주었다.
민족 언론으로 태어난 조선일보는 일본제국주의의 총칼 앞에서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독립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일본 경찰의 만행을 고발하는 시리즈 기사를 연재하다 압수되기도 했다. 항일 기사 연재뿐 아니라 신간회 결성을 주도하며 문자보급운동의 일환으로 한글 교재를 무상 배포하는 등 민족의 문화를 보전하는 데 힘쓰기도 했다. 우리는 조선일보뿐 아니라 여러 독립운동가들과 우리나라 국민들이 열심히 노력을 한 덕분에 현재 우리나라가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임을 다시 한 번 새길 필요가 있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3기 전지우기자,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사회부=3기 전지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