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고 현장체험학습 당일이 다가왔다. 초등학교 1학년 첫 소풍 때처럼 설레는 마음은 여전하였다.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날씨가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늘도 우리의 마지막 소풍이 아쉬웠는지 맑은 날씨를 생각했던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렸고 출발 할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비가와도 우리의 설렘과 기대는 여전했고 우리의 체험학습은 시작 되었다.
첫 번째 목적지는 대구 미술관이었다. 흔히 많은 학생들이 ‘미술관’하면 따분한 곳, 체험할 것이 없는 곳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대구 미술관은 달랐다. DNA, 김인한 컬렉션 하이라이트전: 아름다운 선물, 오트마 회얼 <뒤러를 위한 오마주> 등 다양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특히 DNA 전시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처음 DNA를 보았을 때는 과학시간에 배우는 DNA를 생각하였다. 그 뜻이 아니었다. ‘Design'과 'Art'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줄임말로 디자인과 순수미술의 만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3기 김지현기자,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미술관을 방문 한 후 점식식사를 위해 동인동 찜갈비 거리로 향했다. 동인동 찜갈비는 다른 지역의 갈비찜과는 조금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다른 지역의 갈비가 간장 소스를 기본으로 한 맛을 대는 데 비해 대구 찜갈비는 고춧가루, 마늘을 기본으로 한 매운 맛을 낸다. 양념에 특히 마늘의 비율이 높아 매운 맛이 한꺼번에 올라오지 않고 먹으면서 은은히 올라오는 방식이라 처음에는 그 맛을 느낄 수 없지만 점차 그 매운 맛이 꾸준히 올라온다. 이때 그 맛이 매우 일품이라고 한다. 이전부터 대구 동인동은 찜갈비 맛 집으로 유명하였고 많은 식당들이 여러 차례 TV 프로그램에 방영되었다. 유명 연예인, 운동선수들도 방문할 만큼 맛 집들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우리가 점심식사를 한 식당 역시 야구 선수 이승엽을 비롯하여 유명한 사람들의 사인과 사진이 걸려있었고 우리의 기대 역시 커졌다. 순한 맛, 매운맛 중 선택 할 수 있었고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했기 때문에 순한 맛을 먹었다. 가끔 갈비찜을 먹곤 했지만 전통이 있는 맛 집과는 맛이 정말 다른 것 같았다.
점심 식사 후 향한 곳은 대구 향촌 문화관이었다. 대구 향촌 문화관은 침체된 도심을 되살리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옛 한국상업은행 대구지점을 개보수하여 2014년 10월 30일에 개관하였다. 1950년대 피란시절 문화예술인들의 정신적 고향이었던 향촌동 일원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특별한 문화 공간이며 지하에는 1946년 문을 연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클래식 음악 감상실 ‘녹향’이 자리하고 있어 수준 높았던 당대 대구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1950년대 유행하였던 영화 포스터, 당시 식당, 다방 등 다양한 장소들이 만들어져 있으며 사진을 찍고 추억을 남기기에 매우 좋은 장소이다. 특히 식당에 있는 음식 모형들이 실제 음식 같이 보여 처음엔 매우 놀랐었다. 당시 학생들이 입었던 교복, 양복, 경찰복들이 전시되어 있어 당시 유행하였던 의복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다. 교복, 양복, 경찰복들을 입어 볼 수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옷이 편하여 당시 의복 기술이 나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점은 사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많았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사진이 남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 나 역시 마지막 소풍을 맞아 많은 추억과 경험을 친구들과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고 향촌 문화관은 그러한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기에 매우 적합한 곳이었다. 식당에서 다함께 밥을 먹는 모습, 교복, 양복, 경찰복을 입고 거리에 서 있는 모습, 옛날 전화기를 들고 전화하는 모습 등 과거 생활을 체험해 보면서 과거와 소통하고 시간 여행을 하며 모든 것들을 사진에 담을 수 있어 매우 뜻 깊은 시간이었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3기 김지현기자,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향촌 문화관에서 시간 여행을 한 후 향한 곳은 서상돈 고택이었다. 역사 시간에 ‘국채보상운동’을 벌인 사람으로 배운 적이 있어 조금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서상돈은 조선 말기의 기업인이자 관료였고 민족 독립 운동가였다. 현재 서상돈 고택은 생가를 복원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독립을 위해 맞섰던 그의 숨결과 ‘국채보상운동’을 벌인 그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서상돈의 숨결을 느낀 후 향한 곳은 계산 성당이었다. 우뚝 솟은 쌍탑이 아름다운 성당으로 유명한 계산 성당은 원래는 1899년 지금의 강화도 상공회 성당과 유사하게 십가자 형태의 2층 구조에 기와를 올린 한식 건물로 지었으나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불이 나서 무너지고 그 자리의 지금의 모습으로 새로 지었다고 한다. 고딕 형식의 건물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로 쌓아올린 성당 외벽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한 계산 성당은 영남지방에 천주교를 토착화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한 곳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계산 성당은 현재 아름다운 모습으로 관광객들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에도 선정 되었다. 성당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어도 매우 예쁘게 나왔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3기 김지현기자,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아름다운 성당을 방문 한 후 향한 곳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었다. 1964년 1월22일에 출생한 김광석은 한국의 가수였으며 <이등병의 편지>가 대표곡이며 <사랑했지만>, <서른 즈음에>,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부른 것으로 유명하다. 좋은 인상과 함께 매우 대인배적인 성격을 보여주었고 이 때문에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또한 입대하는 팬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길거리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불러주는 등 팬들에게도 친근한 가수였다. 하지만 1996년 1월6일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였다. 아직까지도 원인을 알 수 없는 죽음이었고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였다. 2009년에 11팀의 작가들이 모여 김광석 거리를 조성하기 시작했고, 골목 곳곳의 벽에는 가수 김광석의 노랫말들과 그에 맞는 그림들, 그의 노래가 연상되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골목을 걸으면서 그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어 그의 음악 세계를 여행 할 수도 있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에는 여러 가지 음식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도 많아 추억을 남기기에 매우 적합한 장소였다. 수제 아이스크림, 핫도그 등 여러 가지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고 아름답게 칠해진 벽화 앞에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남길 수도 있다.
김광석 그리기 길을 걸으며 마음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우리의 여정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마지막이란 말은 항상 아쉬움과 슬픔을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아쉬움과 슬픔 뒤에는 새로운 환경에서 맞이할 기대감, 설렘도 함께 하고 있다. 고등학교 마지막 체험학습이자 학창 시절 마지막 체험학습이었던 4월7일 대구 체험학습. 어릴 적 즐기고 휴식을 취하는 체험학습이었다면 4월7일 마지막 체험학습만큼은 친구들과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의 안정을 취하며 그동안의 추억을 정리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안녕 체험학습 그리고 고마운 영일2반.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알찬 ‘마지막’ 체험학습이었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문화부=3기 기자 김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