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서울 대강당에는 총 3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에서 11시부터 30분동안 진행된 제 1부에서는 학생대표 11명의 독립선언서 및 결의문 낭독, 한국독립유공자협회장의 기념사, 서울지방보훈청장과 박유철 광복회장의 축사, 만세 삼창 행사가 진행되었다.
승병일 회장은 "이 선언은 일제에 대항해 동경에서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외치고 일제가 불법으로 조선을 침략, 강제 병합해 우리 민족의 신성한 역사적 전통과 위엄을 파괴한 죄악상을 폭로하는 한편 민족의 생존을 위해 자유의 행동을 취함으로써 독립을 달성할 것을 세계만방에 외친 우국충정에 불타는 우리 젊은 청년들의 세계평화를 위한 정의로운 외침이었으며 절규였다.”며 기념사를 통해 2 8독립선언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후 11시 30분부터 13시까지 진행된 제 2부에서는 '1910년대 한국인 일본유학생 동향과 2·8독립선언 운동'을 주제로 김형목, 독립기념관 책임연구위원의 강의행사가 있었다.
한편, 일본 동경 한국문화관에서도 오전 11시부터 기념식이 개최했다. 정부대표로 참석하는 권율정 국립대전현충원장 외 약 250여명이 참석했다. 식순은 개회송(2·8독립선언의 노래), 국가보훈처장의 기념사, 재일본 한국유학생연합회장의 2·8독립선언서 낭독, 주일대사·광복회장·민단장의 치사,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이미지출처=원 저작권자 해외교포문제연구소로부터 이미지 사용허락 받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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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독립선언에 대해, 3·1운동의 시초가 된 선언!
2·8독립선언은 재일 한인유학생들이 임시로 결성한 '조선청년독립단'의 11명의 대표위원이 서명하여 1919년 2월 8일 동경에서 600여명이 도쿄 기독청년회관(YMCA)에서 조국독립을 선포한 사건이다.
이는 3·1운동의 시발점이 되어 청년들과 학생들의 항일투쟁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의 간절했던 소망에 힘입어 국내의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대국민적인 독립운동으로 발전시킨 3·1운동은 이후 독립 운동 단체 조직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다.
다음 달, 98주년이 되는 3·1운동을 기념하여 여성 순국열사의 넋을 기리기 위한 시화전 개최, 40명의 대학생 지원자들과 함께하는 '3·1운동 98주년 기념 독립로드', 등의 행사가 진행된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사회부=4기 김나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