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35년간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으며 그 과정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일본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의 의생활에 남아있는 일제 잔재에 대해 소개해보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의생활은 주로 서구화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우리 의생활에 아직 뿌리 깊이 남아있는 일제 잔재들이 꽤 존재하고 있다.
의복은 일상생활에서 타인을 판단하는 단서이자 정보 전달의 요소이다. 또한 의복은 개인의 개성이나 감정, 욕구 등을 표현하기도 한다. 즉, 의복은 실용적인 기능을 갖는 동시에 상징적 기능을 갖는다. 특히 의복은 동조성을 가지게 된다. 동조성이란 개인의 특별한 개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행에 따르는 것을 말한다. 의생활은 어떤 사상이나 철학 혹은 기조 등의 동조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따라서 일제 잔재가 남아있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가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일제의 잔재에 동조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의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제 잔재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교복과 제복이다. 우리나라에서 교복을 처음 착용한 것은 1880년대이다. 이때 미국인 선교사에 의하여 교복이 도입되었고 한복 식 교복이 채택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통치 기구로서의 조선총독부가 설치되면서 1910년 서구식의 교복이 출현하였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김민정 대학생기자]
이 시기 강제적으로 단발령이 선포되면서 한복을 착용하여 느끼게 되는 정체성의 의미 또한 없애고자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교복은 물론이고 다양한 제복들이 도입되면서 빠르게 국내의 의생활을 변화시키기 시작하였다. 제복은 집단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도록 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과는 차별화된다는 특권의식을 가지게 한다. 따라서 교복이나 제복은 군국주의를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일제강점기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난 이후에도 교복 착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학생들의 감수성이나 개성, 가치관 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교복을 입도록 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다양성을 잃었으며 전체주의의 잔재를 자신도 알지 못한 사이에 학습하게 되었다. 사실 국내에서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목적으로 교복 제도가 폐지된 적이 있다. 1983년 교복의 착용 및 두발의 제한은 학생의 개성을 잃게 만들고 일제의 잔재에 불과하다는 각계의 의견들이 나오면서 교복 자유화가 시작되었다.
제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강제성이 없어졌고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교복 제도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가계 부담으로 인한 학부모의 요구가 높아지고 교육계에서도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986년부터는 다시 학교장 재량으로 교복 착용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교복 착용이 다시 대세가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결국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으나 제대로 된 국민 공감대를 끌어내지 못하여 실패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제복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제복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것임으로 공익적 측면에서 필요하다고 할 순 있지만, 교복의 경우에는 반드시 필요한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다양한 개성의 표현을 존중하는 현대 사회의 특성을 고려할 때 교복이 청소년들에게 일제 잔재로서의 제국주의, 전체주의, 군국주의적 시각을 갖도록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문화부=5기 대학생기자 김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