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만으로 여행가는 한국인들이 증가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만에 가서 들리는 곳 중 하나는 중정기념당이다. 중정기념당은 대만의 초대총통인 장제스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
타이페이에 있는 중정기념당.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이서진기자]
현병교대식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이서진기자]
장제스는 대만의 초대총통으로 수많은 한국인들이 대만의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한편 대만사람들은 장제스는 살인자라고도 할 수 있다하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장제스는 어떤 사람이였을까.
//국공내전을 진행하던 1947년, 일본의 지배를 대신한 국민당 정부의 차별대우와 착취를 견디다 못한 대만 원주민들이 들고 일어나자 이를 무자비한 유혈진압으로 짓밟았다. 당시 약 3만 명이 살육당한 “2.28사건”의 발포 명령자는 다름 아닌 장제스였음이 최근의 조사로 밝혀졌다. 2년쯤 뒤에 대만으로 건너온 장제스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정부 활동을 엄금하며(1960년까지 약 14만 명이 반정부 혐의로 투옥되었다), 국민당 외의 정당 활동을 금지하는 등 철권통치로 27년을 집권했다(국민 차원의 총통 선거는 실시되지 않았고, 장제스는 6년마다 국회에서 요식행위를 거쳐 재집권했다).
하지만 장제스의 대만 통치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본토에서는 미처 시도하지 못했던 사회개혁의 부재와 지도부의 심각한 부정부패로 대륙을 잃었다고 자책한 그는 1953년에 토지개혁을 실시해 민중의 생활 안정과 자연스러운 공업화 토대 마련을 달성했고, 세법을 개정해서 산업자본과 복지예산을 확보했다. 공교육 강화에도 힘을 쏟아, 아시아에서는 보기 드물게 전 국민이 9년간 의무교육을 받는 체제를 일찌감치 수립했다. 그리고 부정부패를 엄히 단속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친인척까지 가차 없이 처벌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만이 이후 순조로운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네 마리의 작은 용들”의 하나로 불리게 된 데는 장제스의 공로를 무시할 수 없다고들 한다.//
[출처: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5&contents_id=6711]
대만 현지인들은 장제스가 위와같이 수많은 무고한 대만원주민들을 죽였고 대만원주민들이 사용하던 대만어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강제로 중국본토어를 사용하게 하였으며 독재를 행하였기에 그를 살인자라고 보기도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장제스에 대해 긍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과연 그를 대만의 발전을 이끌어낸 영웅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억압해 대만의 전통을 없애버린 살인자로 보아야 할 것인가.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국제부=4기 이서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