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7일, 예술의전당에서 6월 30일부터 약 3개월간 열려있던 세계적인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의 전시회가 그 막을 내렸다.
카림 라시드는 현세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산업 디자이너 중 한 명임과 동시에 자칭 다원주의자(Pluralist)이자 문화 창조자(culture shaper)이다. 그는 그의 사상을 특유의 곡선을 담아내는 디자인들로 세계를 놀라게 해왔다.
전시회를 보면 항상 연분홍색의 옷을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카림 라시드가 가장 좋아하는 마일드 핑크색으로 관람자들로부터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 카림 라시드는 그가 방문한 국가들에게 아이콘이나 기호를 하나씩 부여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대한민국에서의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이곳이 자신의 현 부인을 만난 곳이라 하여 사랑(LOVE)을 상징하는 ‘+’를 한국을 상징하는 기호로 정했다고 한다.
사실 그의 디자인은 화려하거나 비싼, 민간인들과는 거리가 먼 것이 아닌 현재 우리의 일상생활에 많이 녹아있다. 예를 들자면 타원 모양을 띠는 O’EAU 물병이나 ‘키스하는(kissing)’ 후추통 세트와 같은 것들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이렇게 그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실용성 없고 비싼 디자인을 창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가까이에서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카림 라시드를 처음 세상에 알린 디자인은 쓰레기통 ‘가르보’이다. ‘가르보’는 개당 8달러로 4백만 개 이상 팔렸을 뿐만 아니라 뉴욕의 Museum of Modern Arts(MoMA)에 전시되었다.
사실 그의 직업이 항상 순탄한 길을 걷던 것은 아니다. 그는 캐나다 오타와 칼턴 대학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이탈리아와 캐나다를 다시 거쳐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다. 미국에서 그는 최고의 디자인스쿨 중 하나로 꼽히는 로드아일랜드 조교수로 발탁되고 파슨스 디자인 대학원에서 강사로 고용되었다. 하지만 그는 조교수의 직책에서 1년 반 만에 해고당하고 강사가 된 지 사흘 만에 쫓겨났다. 그 이유는 그가 수업 중에 이론과 철학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는 모든 디자인의 기본은 디자이너의 사상이라고 믿었기에 이러한 수업을 진행했지만 당시 미국은 철학보다는 눈에 보이는 산출물을 원했기에 그는 힘든 길을 걷게 되었다. 그는 일을 찾기 위해 수백 군데의 회사를 방문하고 대가 없이 디자인 스케치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만나게 된 것이 Namb? 라는 작은 회사였다. 기회를 잡은 그는 이곳에서 그의 능력을 발휘해 ‘일립시스 (Ellipses)’ 꽃병, ‘노바 (Nova)’ 촛대, ‘키스하는(Kissing)’ 후추통 세트를 디자인하며 매년 약 5백 만 달러(약 67억 5000만 원)의 수익을 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된 그는 계속해서 민간인들의 옆에서 실용적이게 도울 수 있는 수익성 짙은 디자인들을 창조하고 그것들을 통해 세계 곳곳에 그의 철학을 전파해 나가고 있다.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송경아기자]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국제부=4기 송경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