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길거리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마오리 전통 조형물. 사진=3기하정연기자,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와이탕기 조약은 영국인들과 약 500명의 마오리족 추장들이 서명한 조약으로, 현재 뉴질랜드의 건국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서로 여겨진다. 1840년 2월 6일 Bay of Island에서 처음 서명된 이 조약은 뉴질랜드에 있어 영국인들의 통치권과 마오리족의 권리에 대해 명시하고 있으며, 유럽인들이 합법적으로 뉴질랜드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2월 6일은 현재 뉴질랜드의 공휴일로 지정되어 뉴질랜드인들은 매년 이 조약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와이탕기 조약은 총 9장의 문서로 이루어져 있는데, 영어와 마오리어의 두 버전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마오리 추장들은 영어로 된 문서가 아닌 마오리어로 된 문서에 서명을 한 반면, 영국인들은 영어로 된 문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후에 이 두 문서 사이에 통역의 문제가 발견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논란이 불거지기도 하였다.
영어로 된 문서는 대체적으로 마오리어로 된 문서보다 영국인들의 권리와 영국 여왕의 통치권에 대해 많이 언급하고 있으며, 마오리어로 되어 있는 문서는 마오리족의 권리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내용들 뿐만 아니라 몇몇 단어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당시 마오리족에게는 “총독”이나 “주권” 과 같은 개념을 가진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살짝 다른 의미를 가진 “K wanatanga” 와 “Te tino rangatiratanga”는 각각 “총독” 과 “주권” 을 대체해서 쓰였다. 마오리어 버전의 문서에 서명한 마오리 족 추장들과 영어 버전의 문서에 서명한 영국인들은 같은 조약을 살짝 다르게 이해했다.
이러한 통역 문제들 때문에 조약이 맺어진 후에도 1845년부터 1872년까지 지속된 마오리와 영국 간의 뉴질랜드 전쟁 등 수많은 다툼이 일어났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뉴질랜드의 아름다운 자연도 많이 훼손되었다. 하지만 1872년, 영국의 승리로 결국 전쟁은 끝나게 된다.
현재까지도 마오리들의 권리에 관한 논쟁은 끊임없이 일고 있다. 하지만 뉴질랜드의 학교들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마오리 문화를 가르치고 있다. 초등학생들은 기본적인 마오리어를 필수적으로 배우고, 학교에서 마오리 전통 게임을 즐기며, 마오리족의 노래와 춤도 익힌다. 마오리족과 유럽에서 오래 전 건너온 유럽인들, 그리고 최근 그 수가 급증하고 있는 아시아인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며 서로 다른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운다.
와이탕기 조약으로 인해 싸움도 일어났지만, 결과적으로 이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위한 조약이었고 결국은 서로 다른 문화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3기
문화부 하정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