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살인했다…" 경찰 물대포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 사망

by 3기유진기자 posted Oct 25, 2016 Views 23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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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3기 유진기자,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지난 9월 25일 오후 1시 13분 경 백남기 농민이 314일의 사투 끝에 사망하였다. 백남기 농민은 작년인 2015년 11월 14일에 일어난 제 1차 민중총궐기 도중 서울 종로구청 앞에서 경찰이 직사 살수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시위 참가자이다. 이후 서울대 병원에서 내출혈 수술을 받았지만, 뇌사 상태로 깨어나지 못하였다. 응급 이송과정 중 49분이나 걸린 것이 밝혀져 경찰 구조 의지가 논란이 되었었다.


 이후 당시 뇌수술을 집도한 서울대 병원 의사는 국가 인권 위원회 조사관에게 "단순 외상이 아니라 높은 곳(물대포)에서 떨어진 사람에게 나타나는 임상 소견"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백남기 농민 가족은 강신명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7명을 살인 미수 혐의로 고발 하였으며 경찰 물대포 사용에 대해 위헌이라며 헌법 소원을 제기하였다. 이어서 지난 9월 12일 국회 백남기 청문회가 개최되었는데,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사람이 다치거나 사망했다고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하여 많은 국민들의 질타를 받았었다.


 백남기 농민은 1947년 8월 전남 보성에서 출생하여 대학생 때 부터 유신 헌법 반대 시위를 주동하는 등 여러 시위를 주도, 참여하여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힘썼다.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기 전부터 경찰들은 전경버스로 서울대병원 입구를 봉쇄하고 경찰 3개 중대 250여 명을 배치하였다. 시민 200여명은 경찰 봉쇄를 뚫고 서울대 병원 장례식장에 입장하였다. 이후 백남기 농민이 사망하고 서울대병원에서는 '병사' 사망확인서를 발급하엿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서는 부검이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발표한 데에 비해 검찰 측은 계속하여 부검영장을 청구하였고 이에 백남기 농민 가족은 기자회견에서 "아버지를 쓰러지게 한 것도 경찰인데, 돌아가신 이후에도 괴롭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라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백남기 농민 사망과 이에 대한 검찰의 계속적인 부검영장 발부, 경찰의 장례식장 포위 등에 많은 국민들은 " 국가가 살인했다", "제대로 사과해도 모자란데 부검까지 하려 하냐"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정치부=3기 유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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