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도심 속, 예술인들의 흔적을 만나다

by 11기김사랑기자 posted Nov 28, 2018 Views 1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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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힘겨웠던 뜨거운 더위가 지나고, 어느덧 차가운 가을이 저물어가는 계절의 마지막에 우리는 도착해 있다. 아쉬운 가을이 끝나기 전, 복잡한 서울의 도심 속 살아 숨 쉬는 예술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짧은 12일 동안 문학기행을 떠났다. 아쉬웠던 짧은 하루를 보낸 서울의 서촌은 옛 시절에 설계되었던 한옥이 본연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우리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이 묻어 나오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곳 서울에서 우리의 문학 작가 윤동주,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이상. 그리고 화가 이상범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밤하늘을 사랑한 시인, 윤동주를 만나다-

별을 사랑하는 시인, 늘 고뇌하던 한 청춘, 시인 윤동주. 윤동주는 민족 시인으로서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시인이다. 글을 사랑했던 그는 의과 진학을 바랐던 가족들의 뜻을 어기고 문학을 공부하였다. 그리고 더 큰 뜻을 펼치기 위해 창씨개명까지 하면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윤동주는 일본에서 유학 생활을 하면서도 고향에서 힘겹게 싸우고 있을 동무들 생각에 맘 편히 하루하루를 보내지 못하였다. 그러면서도 쉽게 쓰이는 시를 보며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늘 스스로에게 되물어보았던 윤동주는 19437독립운동을 모의했다는 혐의로 감옥에 갇히게 되며, 독립을 6개월 정도 앞둔 19452월에 그는 자신이 그토록 바라왔던 조국의 독립과 자신의 첫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출간되는 것도 보지 못한 채 안타깝게 옥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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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김사랑기자]


서울시 종로구 누상동 9번지에 위치한 이곳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 윤동주 하숙집터는 윤동주가 일본으로 유학 가기 전 하숙을 했던 곳으로 1941년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에 재학 중이던 윤동주가 자신이 존경하던 소설가 김송의 집인 이곳에서 하숙을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자화상' '또 다른 고함' 등 그의 대표작이 이 시기에 쓰였다. 아쉽게도 집의 원형이 남아 있지 않고 터만 남아있었지만 잠시나마 이곳에 존재하였던 윤동주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천재 작가 이상-
기존의 문학 세계에서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하였던 시인 겸 소설가 이상. 이상은 한국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우리나라 문학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본명은 김해경으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오감도’ ‘날개’ ‘봉별기’ 등이 있다. 1930년 조선지에 연재된 장편 소설 ‘12월 12일’이라는 작품으로 문학계에 데뷔를 하게 된 이상은 생전에 다소 난해한 작품들을 발표하여 논란을 받고 연재를 중단하기도 하였으나, 또 다른 면에서는 그만의 문학 세계를 극찬하는 문학인들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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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김사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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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김사랑기자]


작가 이상이 세 살부터 20여 년간을 머물렀던 이곳 이상의 집은 지금은 아쉽게도 집터의 일부에 자리하고 있다. 통유리로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이상의 집은 현재는 열린 공간으로 시민들이 편히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로 꾸며져 있다. 아쉽게도 찾아갔던 날은 내부 공사 진행으로 인해 들어가 보지 못했지만, 내부에는 큰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이상이 생전에 썼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어 편하게 이상의 작품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상이라는 작가를 알아 갈 수 있는, 그만의 문학 향기가 가득한 이곳 이상의 집에서, 이상만의 문학 세계에 빠져보는 것이 어떨까?


-청전 이상범-

대한민국 동양화 분야의 토대를 닦으며 전통 산수화의 명맥을 이어간 청전 이상범. 이상범은 근대 한국화를 빛낸 화가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산수화에서 ‘청전 양식’으로 불리는 독창적인 화풍을 이륙하고 우리 근대 미술의 자부심을 살려준 대표적인 우리의 화가이다.


KakaoTalk_20181124_213753158.jpg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김사랑기자]


근현대 예술가들이 밀집해있는 서촌에는 거장 이상범의 가옥도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 이상범 가옥은 이상범이 살았던 집과 작품 활동을 하던 화실이다. 이상범 가옥은 ㄱ(기역)자 안채와 ㅡ(일)자 행랑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근대 도시 한옥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안채 앞마당 대청 마지막으로 응접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시 한옥에서는 드물게 부엌에 찬마루를 갖고 있는 것이 가옥의 특별한 점이다.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해체될 위기도 겪었지만,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4월 15일 등록문화제 제171호로 지정되어 이상범의 예술의 혼이 이곳 가옥에서 지금까지도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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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김사랑기자]


파란색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마당이 우리를 반겨주며, 마치 옛 시대로 돌아간 듯한 큰 텔레비전도 대청에 크게 위치해 있다. 텔레비전을 켜면 금방이라도 옛 시대에 서울로 돌아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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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김사랑기자]


그리고 천천히 집안을 둘러보면 그가 사용하였던 책과 여러 물건들이 거장의 공간을 고스란히 채워주고 있었다. 지금은 그가 이곳에 존재하지는 않지만 생전에 생활했었던 공간을 둘러보며 지금까지도 이 공간에 존재하는 그의 흔적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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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9기 김사랑기자]


그림을 그리다 잠시 쉬러 떠난 것처럼, 가옥 안에 화실의 모습은 여느 화가처럼 미술용품들이 주위를 채워놓고 있었다. 한편에는 이상범이 미처 완성하지 못한 작품들이 남아있어 당장이라도 그가 다시 이곳에서 붓을 들며 한 점, 한 점.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상범이 사망하기 전까지 실제로 34년간 작품 활동을 한 이 가옥은 관광객들이 어떠한 규약 없이 돌아다니며 그의 작품과 생활공간을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이다. 마치 이상범의 절친한 친구가 되어 이곳의 초대받아 놀러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 사람이 남기고 간 흔적은 간혹 떠난 이의 공간을 채워주고, 그리워하는 이의 마음을 위로해주며 오랫동안 우리가 그 사람을 잊지 않게 해준다. 그리고 그 흔적은 이상범의 작품과 붓처럼 사물이 될 수도 있고,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다른 것의 흔적일 수도 있다. 사랑하는 친구들, 가족들 그리고 또 다른 사랑하는 이와 이곳에서 옛 시절 그들이 머물렀던 흔적과 발자취를 함께 걸어보는 건 어떨까? 그들의 흔적이 어느 순간에, 당신의 마음속 깊이 영원토록 머무를 것이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정치부=9기 김사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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