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의 선포에서 을사늑약 불법 조약까지 대한제국의 길을 걷다

by 6기단승연기자 posted Nov 06, 2017 Views 14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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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우2.jpg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단승연기자]


3.1운동 100주년 서울시 기념사업 세 번째 답사의 길은 대한제국은 어디서 시작되고 어떤 길을 걸었는지 비록 짧은 역사지만 유적지를 따라가며 되짚어 보고자 한다.
 
고종은 환구단에서 1897년 10월 12일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황제가 되었다. 왕위를 계승하는 것은 특별한 행위를 통해 되는 것이 아닌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한다. 오직 왕만이 제사를 지내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환구단은 일제강점기인 1913년에 철거되고 조선 호텔이 건축되고 현재는 3층 8각정 황궁우만이 남아있다.
 
환구단을 지나 고종이 1897년 황제즉위 이후부터 1907년 물러날 때까지 머물렀던 덕수궁(경운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덕수궁은 월산대군의 사저였다고 한다. 덕수궁의 관문인 대한문(대안문)은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흔적만 남아 있었다.
 
덕수궁을 지나 중명전에 도착했다. 중명전은 광명이 그치지 않는 전각이라는 뜻을 가졌으나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불법적으로 체결된 대한제국의 아픔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1907년 4월 20일 헤이그 특사로 이준 등을 파견한 곳이기도 하다.
 
중명전을 지나 그 당시 변변한 숙박시설이 없던 시절 서울에서 가장 유명하고도 주목 받는 서양식 호텔이었던 손탁호텔 자리에 도착하였다. 현재 이화여대 100주년 기념관 위치이다. 덕수궁을 중심으로 미국, 영국, 러시아 대사관이 인접했던 곳으로 당시 지도층들의 비밀스러운 친목 단체를 위해 모였으며, 자연스레 정치와 외교의 주 무대가 되었다. 1905년 일본특파대사 이토 히로부미가 숙소로 잡아 여러 날 머물며 조약 체결을 위한 배후공작과 압박을 가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장소는 아관파천의 현장인 옛 러시아 공사관이었다. 이곳은 고종이 을미사변때 신변의 위협을 느껴 피신했다가 1897년 2월 덕수궁으로 환궁하기 전까지 머물렀던 장소이다.
 
지금까지는 그저 무심코 지나가던 장소이거나 몰랐던 곳이 이제는 한 번 더 돌아보게 되고 그 당시 복잡했던 정세를 되짚어보게 되며 다시는 반복하면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중명전.jpg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4기 단승연기자]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문화부=4기 단승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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