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by 3기이유수기자 posted Apr 25, 2016 Views 28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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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위의 내용이 무엇일까? 바로 대한민국헌법의 전문이다. 이에 따르면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따른다고 명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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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3기 이유수 기자,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3.1운동이란 무엇일까? 무단통치 시절인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의 지도로 서울에서 시작될 계획이었지만 민족대표 33인은 요주의 인물이던 사람들이 공원에 몰려 있으면 무장 경찰들이 사전에 이들을 체포할 수도 있고, 자칫 사람들 감정이 자극되어 유혈사태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태화관에서 독립선언문 낭독한 후에 바로 체포되었다. 이에 대해 청년 정재용은 당황하지않고 민족대표 대신 파고다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한다. 3.1 운동은 1919년 5월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인 독립운동으로 확산·전개되었다. 민족 최대의 평화적 시위를 전국적으로 전개하였으나 일제의 가혹한 탄압으로 많은 희생을 내고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3·1운동의 목적은 국권회복과 민족자주에 있었기 때문에 3·1운동이 비록 일제의 무력탄압으로 그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역사적, 민족사적으로 우리의 의사를 평화적으로 국내외에 개진하였다는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1919년에 조선인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시작되었던 3.1운동은 2016년이 되어 97주년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서대문형무소, 광화문, ‘위안부’ 소녀상, 서울랜드 등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계층을 위한 행사들이 진행되었다. 이는 국내 행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로스앤젤레스 한인회와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 미주광복회 및 광복 전까지도 계속해서 항일운동을 이어왔던 대한인국민회 등의 해외기관에서도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삼일절을 맞아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를 한 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라가 있어야 국민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하루하루에 감사하면서 살아가자.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국제부 = 3기 이유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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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뉴스팀 2016.04.25 00:38
    (댓글) 3기임화연기자

    독립 운동가 분들에게 감사하게 되는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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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기전지우기자 2016.05.01 23:25
    독립운동가분들로 인해 현재 우리나라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유수 기자님의 기사로 다시 한 번 독립운동가 분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역사에 관련된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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