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시절 서울의 문화재, 덕수궁 석조전

by 문나영대학생기자 posted Feb 26, 2025 Views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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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촬영=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문나영 대학생기자]

덕수궁 석조전은 고종이 침전 겸 편전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서양식 석조건물로, ‘석조’는 ‘돌로 짓다’라는 뜻이다. 영국인 하딩이 설계한 이 건물은 대한제국의 근대화를 위한 정책의 하나로 지었다. 석조전은 서양의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으며, 건물의 앞과 동서 양면에 발코니가 설치된 것이 특징이다.

석조전은 접견실과 대식당, 침실과 서재 등을 갖춘 황궁으로 건립됐으나, 일제강점기에 미술관으로 용도가 변경된 이후 국제회의장, 박물관 등으로 사용되면서 원형이 많이 훼손됐다. 이에 정부는 석조전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대한제국의 역사적 의미를 회복하고자 2009년부터 복원 공사를 시작, 지난 2014년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을 개관했다.

1938년 당시 덕수궁미술관(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을 건립되면서 현재의 물개 모양 조각상을 설치한 분수대가 계획되어 있었지만 분수대는 1938년 6월 미술관 개관에 맞춰 완성되지 못했다. 2009년부터 2014년까지의 복원 공사 후 분수대가 완성되어 현재 석조전 앞에는 물개 모양 분수대가 있는 정원이 생기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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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촬영=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문나영 대학생기자, 덕수궁 석조전의 일부인 접견실과 대식당]

접견실은 황제를 접견하는 곳으로 석조전 실내 중 가장 화려하고 위엄 있는 공간이다. 다른 방과 달리 이화문(오얏꽃무늬)를 가구와 실내장식에 사용했다. 이화문(오얏꽃무늬)은 태극기, 무궁화와 더불어 당시 대한제국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서양식 관복, 군복, 훈장, 공문서, 동전, 우표, 관용 식기 등에 사용됐다. 

현재 접견실은 북쪽 천장의 1/3 정도가 남쪽보다 낮게 되어 있는데, 이는 한국전쟁 때 파손되고 노후화되어 내려앉은 천장의 하중을 보강하기 위해 철골보가 추가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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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촬영=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문나영 대학생기자, 대식당]

대식당은 행사 후 만찬을 베푸는 공간으로 1918년 대식당 사진을 참고하여 복원됐다. 대한제국 시기 외국인이 참석하는 연회에는 대부분 서양식 코스 요리 가 제공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덕수궁 석조전은 문화재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관람하는 제한관람 형태로 관람 전 예약을 해야 입장이 가능하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경제부=8기 대학생기자 문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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