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김하은 대학생기자, 한 편의점에 설치되어 있는 셀프계산대]
키오스크(Kiosk), 이제 우리에겐 너무 익숙해진 이름이다. 편의점, 음식점, 영화관 등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키오스크는 주문을 지배하는 ‘신문물’이다. 가게 입장에서 일거리를 수월하게 단축시켜주고 손님과 주문을 하며 미묘한 신경전을 주고받을 필요도 없게 해주는 키오스크는 그 유용성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제는 직접 주문을 해야 하는 가게를 찾기 힘들 정도이다. 그렇게 하나 둘 바뀌어가는 사회의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노인들이다.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시대를 따라가는 것은 한평생을 손글씨로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오던 노인들에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사회는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편리한 디지털 시대를 광고하고 애용한다. 자그마한 폴더 폰에 연락처 하나 등록하기도 버거운 노인들에게 키오스크를 사용하게 한다는 건 마치 평생을 목수로 살았던 사람에게 기계를 제작해보라는 말과도 같다.
인터넷에는 가끔 키오스크를 하염없이 바라보다 결국 돌아선 노인의 이야기, 정말 먹고 싶은 가게를 찾아갔다가 키오스크로 주문을 못해 슬픈 마음 만을 안고 돌아온 장애인의 이야기, 그 밖의 현대 사회에 적응하기 어려운 노인들의 모습에 대한 이야기가 올라온다. 음식점의 알바생들은 이러한 노인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대부분 바쁜 와중 일거리를 더 떠맡고 싶지 않은 마음에 대충 안내하거나, 그저 키오스크 설명대로 주문하라고 말할 뿐이다.
시대는 확실히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급변한 생활방식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존중과 배려의 대책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작은 안내문부터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키오스크 주문이 어려우신 분들은 언제든지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세요’. 단 한 줄의 문장이어도 머뭇거림을 유의미하게 줄여줄 수 있을 것이다. 거의 정착화되어 버린 키오스크 주문을 이제와서 다시 예전으로 바꾸자는 제안은 어불성설이다. 가장 효과적인 해결방안은 결국 배려와 존중이다.
그렇기에 더욱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회 분위기의 조성은 시대를 타지 않고 언제까지나 추구 되어야 할 덕목이다. 우리는 나이로, 성별로, 성향으로, 외관으로 특정 타인들을 묶어 자신이 생각하는, 혹은 ‘우리’가 생각하는 프레임을 뒤집어 씌운다. ‘우리’는 ‘우리’로 존재하고, ‘그들’의 범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들’은 정상적이고 지배적인 ‘우리’를 형성하게 해주는 마치 그림자 같은 존재로 빛에 종속되어 존재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정한 ‘그들’의 역할이다. 노인들은 철저히 ‘그들’이 되어 목소리가 크고, 고지식하고, 기피하고 싶은 존재로 낙인 찍히기도 한다. 노인들이 살아왔던 시대적인 배경은 어떠했는지 이해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은 채 그저 다르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도 우리만의 시대를 살고 있다. 혹시 아는가, 몇 십년이 지났을 때 ‘그들’이 되는 건 ‘우리’일지도 모른다.
도움을 청하는 노인이 있으면 기꺼운 마음으로 도와주려는 사람이 가득한 사회를 꿈꿔 본다. 자신의 행동이, 사회분위기로 형성되는 행동들은 결국 우리에게 모두 돌아온다. "대접받고 싶은대로 상대에게 행동하라" 이 유명한 격언은 마치 이 글을 관통하는 듯하다. 가끔 우리 세대가 젊음에 한복판에서 간과하는 진리가 있는 것 같다. 그건 바로 우리의 미래의 모습은 노인이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사회부=6기 대학생기자 김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