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설명=이창민 대표, 이미지 제공=이창민 대표, 저작권자로부터 이미지 사용 허락을 받음]
본 인터뷰는 본지 기자와 러닝스푼즈 이창민 대표가 23년도 4월 6일에 대면으로 진행하여 기록한 내용입니다. 기사는 총 2부로 이루어져, 1부는 사람을 주제로, 2부는 그 사람이 가진 생각을 중심 주제로 구성됐습니다. 본 기사를 읽으시기 전 참조 바랍니다.
(1부 인터뷰 인트로) 조희재 기자(이하 '나'): 개인적으로 저는, 회사란 회사의 건물과 간판이 아니라, 그 회사가 담은 하나하나의 인물이 모여 그 매력을 본질적으로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아무리 변한다 해도, 기업의 본질이 사람인 점은 지난 300년 기업 역사 속에서 여전히 건재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업에 대한 얘기가 아닌, 기업에 있는 사람과 그 사람의 생각에 더 주목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습니다. 새로운 HRD의 시대를 이끄는 사람, 러닝스푼즈 이창민 대표님입니다.
나: 안녕하세요.
이창민 대표(이하 '이'): 안녕하세요.
(첫 번째 질문) 나: 뻔한 자기소개는 조금 따분하니까. 딴 한 단어로, 자신을 표현하자면.
이: (웃음) 음. 과거에 취업준비할 때 이거 진짜로 많이 준비했었거든요.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까. (정적) 이게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거든요. 편하게 말할게요. 나중에 알아서 정리해주시면 되니까. (웃음) 살면서 정말 많은 문제를 겪었거든요. 제가 살아온 삶이 항상 그랬어요.
대학에 입학하고 회계사 공부를 했는데, 1년을 공부하던 중에 어머니가 암 말기 진단을 받았어요. 어머니께서 치료를 해야 하는데, 심지어 수술비도 없었죠. 그때 제 나이가 24살, 대학생 3학년. 어찌저찌 치료비를 모아 어머니께서 수술을 들어가셨는데, 2시간이면 끝난다는 수술이 10시간이 넘어도 나오지 않으시는 거에요. 뭔가 잘못됐음을 느꼈죠.
나: 말씀 중에 정말 죄송합니다만, 제가 거의 인터뷰 전에 모든 인터뷰를 전수조사하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처음 듣는 이야기거든요.
이: 네 맞아요. 기자분들이 제 회사에는 관심이 많지만, 아무도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으니까요. (웃음) 오늘 이런 기회가 와서 좋네요. 아무튼, 어머니의 그 일이 있고, 저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어요. 그러나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는 데까지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돈을 벌어야겠다.'. 그 뒤, 일주일도 안돼 돈을 많이 주는 곳을 찾아 한 여의도에서 증권사 계약직 인턴을 지원했어요. 다들 인턴이라고 대충 차려입을 때 저만 정장을 입었죠. 그렇게 면접에서 "복장부터 다르네요."라는 말을 듣고 7개월 동안 일을 했어요.
또 돈을 벌어야 할 때가 찾아와 4학년 1학기가 지나, 돈이 필요해서 SK그룹 SUMMER 인턴에 지원했어요. 그런데, 지원자가 수백 명인데도, 경제위기로 딱 3명만 뽑는다는 거예요. 저는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더는 고민하지 않아요. 그래서 전날 또 고민을 했죠. 나는 뽑혀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할까. 결국, 밤새 비타500에 제 얼굴 붙여 (면접 날) 아침 일찍 찾아갔어요. 그러다가 "아침에 걔 누구냐."고 해서 한 분이 저를 찾아오셨어요. 그룹 사장님이셨죠. 그렇게 또 입사하게 됐어요. 그래서 저의 20대를 보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문제의 연속이었는데.
나: 그래서 한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돌파해온 사람’이다.
(두 번째 질문) 나: 안 그래도 이 일화에 관한 얘기가 다른 인터뷰에도 많이 소개됐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좀 색다른 질문을 생각해봤는데. 요즘도, 이런 실행력과 돌파력, 몸소 행동으로 보이셨던 일이 최근에도 있으셨는지.
이: 아, 어제도 그런 일이 있었죠. 이번에 새로운 사업을 하나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곳에 평소에도 알던 회사라, 그날 시스템이 막혀 있지도 않고 평소엔 자정까지만 잘 내면 문제가 없어서 그날도 똑같이 그렇게 했죠. 18시까지 초안을 내고, 20시에 한 번 더 최종본을 냈어요. 그런데 이것(최종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예요. 18시까지 제출이었다고. 그래서 다시 18시까지 보낸 것(초안)을 보니까 커리큘럼과 일정, 심지어 강사진도 다 빠져있더라고요.
이거 포기할 거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사실상 포기하라는 거죠. 저는 그때, "간다. 이 부분은 내가 맡는다. 발표도 내가 맡는다."라고 저희 팀원들에게 얘기했어요. 되도 평균인 거고, 안되면 망신인 건데.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죠. 그래서 끝내는 이 사업이 확정되고, 당시 일은 마무리가 잘 되었습니다. 결국, 이것도 포기하려고 마음먹었으면, 안됐을 텐데 말이죠.
또 저만 이런 것도 아니에요. 제가 뽑은 우리 회사 사람들이 대부분 다 이렇죠.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 투지'라는 핵심 가치를 공유하고 있어요. 또 그런 생각들이 모여, 조직문화를 만들어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지금까지 이 회사가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나: 포기하지 않는 마음.
이: 아뇨. 포기하지 않는 투지. 마음으로는 부족합니다. (웃음)
[사진 설명=인터뷰 장면1, 이미지 촬영=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조희재 연임기자]
(세 번째 질문) 나: 대표님께서 이런 말씀을 종종 하셨더라고요. "나는 죽어도, 밖에서 굶어 죽는다." 그런데 요즘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들은 이를테면 경제적 자유 같은 정적이고 편안한 삶인데요. 저도 요즘 살이 많이 쪘지만, (웃음) 모두가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것을 꿈꾸는 세상인데, 왜 그런 발언을 하셨는지요. 다시 말해 어떤 것들이 당신의 삶에서 엔진의 역할을 했는지.
이: 저는 '주체성', '주도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어떤 사람일까가 가장 중요했던 것 같았어요. '서울대 다니는 너', '증권사에서 얼마를 버는 너'가 아니라 '네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보면 거기에 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공허하거든요. 저는 그런 명함을 떼고 저 자신을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안정적인 수익을 포기하고, 바로 필리핀으로 배낭 메고 출발한 것이 '이창민'으로서의 시작이었죠.
나: 어쩌다가 필리핀으로 향하게 된 것인가요?
이: 어머니가 저를 공부방에서 키우셨거든요. 그래서 제게는 교육이라는 것이 큰 화두였어요. 저의 어린 시절 다른 친구들이 다 공부를 포기하고, 공부에 큰 관심을 못 가져 나중에 고생한 친구들이 많은데 나는 왜 이런 (성장 혹은 자기계발 등의) 시간을 가졌던 걸까. 성인이 돼서 되돌아보니까, 어머니께서는 그 시대에 대학 교육을 다 받으셨고, 그 교육을 저에게 물려주신 것이 정말 크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거기서 화상으로 교육사업을 해보고 싶어서 막무가내로 가봤습니다.
나: 제가 원래 준비했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미 꽤 많이 나왔는데요. 그중에 하나가 '이창민 대표가 교육에 관심을 가지 게 된 것은 선천적인 영향일까, 후천적인 영향일까?'거든요. 지금 보니 둘 다 있으셨던 것 같아요. 가정환경이라는 선천적인 영향도 있었고, 또 다른 인터뷰를 보면 대학 시절의 교육 봉사 등의 경험을 통해서 교육에 대한 매력을 발견하기도 하셨던 것 같고요. 교육이 누군가 성장하는 재미를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이: 네 맞아요.
나: 어제는 제가 증권사에 잠시 다녀왔는데, 그분과는 삶의 결이 아주 다르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옳고 그름과 별개로) 어제 뵌 분은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물질을 더 추구하는 삶을 사는 느낌이었는데, 대표님은 물질보다 재미와 또 가치를 추구하는 분이신 것 같습니다.
(네 번째 질문) 그래서 이런 질문이 또 나올 것 같은데요. 국내의 한 유명 물리학자가 이런 말을 했었죠. "우리는 이 넓고 심심한 우주에서 불현듯이 들이닥친 생명체다." 이런 관점에서 이창민 대표는 왜 내가 지금 살고 있는가에 대한, 다들 한 번쯤 고민해봤을 이 질문에 어떤 답변으로 지금까지 살아가셨는지.
이: 내가 죽기 전에, 이 세상에 아주 작은 스크래치라도 남기고 싶어요. 테레사 수녀처럼 누군가에게 임팩트를 남기고 있을 수도 있을 테고. 저는 고객의 성장, 또 팀원의 성장, 결국 제가 좋아하는 교육이라는 일을 통해서 이 세상에 임팩트를 남기고 싶어요.
세상의 모든 진보의 역사는 다양성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서울대만 뽑아서 팀을 이룰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정말 다양한 인원으로 구성돼있어요. 서울, 지방, 심지어 교육과는 좀 동떨어진 경찰 출신도 있죠. 이런 사람들이 각자의 시각을 가지고, 하나의 주제를 가지면 함께 성장한다고 믿는 거죠.
나: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이렇게 이해해도 될까요.
이: 그렇죠. 그래서 지금 제가 추구하는 가치를 살려 잘 살아가다 보면, 성장이나 성과는 그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해요.
나: 어떻게 보면 선한 영향력이라고 봐도 될까요.
이: 아뇨. 저는 그런 표현은 안 좋아합니다. 사람이란 건 모두 좋고 나쁜 면이 다 있는데, 제가 무작정 뭔가 선하다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요.
나: 그래도 이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이: 그러게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직원들을 푸시해서 더 돈을 벌어야 한다거나 그런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직원들을 성장시켜주고 싶죠. 그래야 저를 믿고 따라오는 것이고, 그때가 돼야 서로 상생하며 열심히 하는 거니까요. 그만큼 저는 또다시 팀원들을 도와줘야하는 것이고요.
(다섯 번째 질문) 나: 그런 팀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는지.
이: 몰입. 몰입의 시간이 있으면, 성장의 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꼭 회사가 아니더라도, 개인의 커리어를 위해서 일하라고. 저는 절대로 회사를 위해서 일하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개인을 위해서 일하면, 회사를 위한 것은 반드시 따라오니까요.
[사진 설명=러닝스푼즈 팀원의 생일축하 모습, 이미지 제공=이창민 대표, 저작권자로부터 이미지 사용 허락을 받음]
(여섯 번째 질문) 나: 그리고 또 도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얘기가 있다면.
이: 제발 그냥 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일단 생각을 너무 하진 말았으면 좋겠어요. 가면 가고, 말려면 말고. 너무 책상에만 앉아있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누군가의 말을 듣고 잘 흡수하는 것도 본인의 능력이지만, 기본적으로 내 내면에서 확고하게 외치고 있는 게 있다면, 그냥 그건 가야 하는 거예요. 내 나이, 내 상황, 내 문제들을 자꾸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하지 못해요.
나: 안 그래도 이런 질문을 많이 들으며 살아오셨을 것 같아요.
이: 그렇죠. 창업이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돼요. 이런 생각이 드시면, 안 하시는 게 맞다 생각해요. 정말 험난한 것이 창업이라는 과정인데, 약간의 문제라도 보이면 좌절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자기 마음속에서 확고하게 외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냥 바로 하고, 아니면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자꾸 누군가에게 묻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되라는 거네요.
이: 그렇죠. 이걸 어떻게 성공시킬지, 그걸 고민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잘 되는 사람이라고 봐요.
(일곱 번째 질문) 나: 1부 마지막 질문입니다. 과거 인터뷰를 참고해보면 호기심이라는 단어를 꽤 많이 사용하셨더라고요. 4년이 지난 지금도 호기심을 가지고 계신 분야가 있다면.
이: 저는 요즘도 여전히 호기심이 많아요. 다양한 산업에 발을 디뎌보려 하죠. 심지어는 사람을 채용할 때도 호기심을 보고 뽑아요. 이제는 이 사회 자체가 이미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에요. 내가 예를 들어 마케터인데, 새로운 머신러닝을 적용하여, 고객을 데이터화 시켜서 적용한다던가. 이런 새로운 호기심이 결국은 앞으로 사회에서 살아남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이고, 또 호기심이 가득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1부 인터뷰 아웃트로) 나: 이 대답으로 인해 2부 순서가 바로 연결될 것 같습니다. 울트라 러닝의 시대. 교육 산업구조가 혁신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제가 사범대 입시 면접을 할 때만 해도, 지난 100년간 교실의 모습이 바뀌지 않았는데, 앞으로는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100년간 바뀌지 않은 교실의 모습이, 코로나라는 대격변의 시대를 맞아 큰 변화를 맞았습니다. 과거의 교육 시장은 캐시카우(사업을 이끌어 가는 회사 내부의 비즈니스 구조)를 하나 발견해서 먹고사는 시장이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은 시대가 다가온 것인데요. 이런 어떤 면으로 다소 안정적이지 못한 시대 속에서, 가지고 있는 두려움은 없으신지.
※ 2부 기사 내용은 구글이나 줌에서 '[인터뷰] 러닝스푼즈 대표 이창민, 2부' 검색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청소년기자단 그룹취재부=조희재연임기자]